불완전한 존재들 -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텔모 피에바니 지음,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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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자기 작업물을 수정하고 끊임없이 손질하고, 이쪽을 자르고 저쪽을 늘리며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계속해서 수정하는 땜장이처럼 행동한다(154)."

저자 텔모 피에바니는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다. 이 책은 생물체의 불완전함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얼마나 다양함을 만들어냈는지를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책은 7장으로 되어있다. 1장 찰나의 균열,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작됐다, 2장 불완전한 진화, 3장 불완전함이 작동하는 법, 4장 DNA에 각인된 쓸모없는 것들, 5장 뒤집힌 상식, 인간의 뇌, 6장 결함투성이 현자, 7장 호모 사피엔스가 파는 중고차를 산다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우주에 평형을 이루던 에너지가 이탈하며 원자가 다른 원자를 치면서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그렇게 우주가 시작되었다. 우주의 폭발과 지질학적 격변이 끝나고 태양계가 완성된 시기에 지구는 살만한 곳이 되었다. 생물체는 최초의 박테리아로부터 다양한 종들로 분화됐는데, 원핵생물로 시작해 단세포진핵생물로, 다시 다세포생물에서 곰팡이와 동식물로 발전했다.

지구의 산소가 독으로 작용하며 산소가 없어도 번성하던 혐기성 미생물들이 현재의 인간과 반추동물의 창자에서 발견된다. 지구 생성의 역사가 고스란히 개체에 남아있고, 여전히 활동하며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분섭취, 대사, 면역체계를 갖추게 하고, 이 미생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당뇨병이나 신경퇴행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미생물은 인류가 존재하기 전부터 지구에 있었으며 지구를 화학적으로 바꾸어놓았고, 인류가 종말하고 난 후에도 남아있을 존재이다.

진화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있는 것에서 변경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뇌에는 불필요한 게 많고 복잡한데, 이는 임기응변식으로 변화한 과거의 흔적이다. 미리 예상하고 완벽하게 만든 것이라면, 식도와 기도가 가까이 붙어 있어서 기도로 음식물이 들어가면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지 않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인간이 나무 위에서 내려와 땅위에서 이족보행을 하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족보행의 장점은 먼곳의 포식자를 쉽게 볼 수 있고, 두 손이 자유로워져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지만, 신체적 문제점들이 생겨났다. 이족보행은 척추에 큰 부담을 주고, 좌골신경통과 탈장, 평발의 고통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을 때 작아진 골반으로 큰 아이의 머리가 나와야하므로 다른 동물들보다 덜 성숙한 아이를 생산하고 오랫동안 돌봐야하는 일련의 변화가 생긴다. 인간의 뇌는 태어나 20년이 넘도록 느리게 발달한다는 사실이 이족보행의 결과라니 놀랍다.

우주의 탄생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화과정을 300쪽이 안되는 분량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책이다.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려는 개체의 길고 끊임없는 노력이 현재에 이르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모든 생물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급격한 환경의 변화에 멸종했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것들이 우연히 살아남아 여전히 변화하는 중이다. 창의성과 공격성을 가진 인류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이고, 지구전체에 퍼져있으면서 저질러놓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나가야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진화에 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오해를 바로 잡아주는 책이다. 다윈의 주장과 철학자들의 인용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유머가 간간이 있어서 과학책이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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