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노인 - 나는 58년 개띠, '끝난 사람'이 아니다
이필재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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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노인은 왠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인 듯하다. 보수 청년만큼.

2018년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연령대별 정치성향이 54세부터 보수성향이 진보를 역전한다고 한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보수성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진보에 서는 사람은 이러한 성향을 거슬르는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젊은 시절의 마음을 유지하며 공정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이상주의자와 같다.

저자는 중앙일보와 시사잡지에서 일했고, 정년퇴임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보적 노인이라고 부르지만, 원칙주의자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치를 따져 옳지 않은 것에 타협하지 않고, 옳은 것을 밀고 나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몸에 베인 가부장적인 습관은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몇 개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했다고 말한다. 기자로서 촌지를 받지 않겠다든가, 군대에서 부하를 구타하지 않겠다는가, 강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초심이다. 그래서 누구와 인터뷰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기사를 쓸 수 있고, 부대 내에서 이어지는 폭력을 끊겠다는 노력을 보여주었고, 누구보다 빡센 수업을 진행한다. 딱딱한 사람처럼 보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결같은 태도는 신뢰감을 줄 수 있겠다.

간혹 저자에게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원칙도 있는데, 가정에서 딸과 아들에게 남녀 평등을 가르치면서도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극복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남자는 담배를 펴도 되지만, 여자는 좀 그렇다라는 생각이다. 딱히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비난하지 않지만, 그저 그런 모습이 불편하다. 딱히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글은 필요없는 단어는 조사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깔끔하다.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한국사회를 꼬집고, 진보정당의 보수화, 기독교의 문제점, 당연시하지 말아야하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다각도에서 살핀다. 여성의 권익, 재벌총수와 언론, 교회와 동성애자, 한국 대통령과 기독교, 정치와 언론조작, 진보와 보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빵 터지는 반전 유머도 매력적이다. 예로, "선배들과 보신탕집을 향했다.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으려니 맛이 안 느껴졌다. '얼마나 살겠다고 당기지 않는 음식을 먹나.' 더이상 먹지 않았다. 그 후로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58년 개띠다(102)," "나도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눈감고 싶다. 직업적인 글쟁이에겐 현장이라고 해봤자 책상머리이다(137)," "기자와 형사, 세무서 직원 셋이서 밥을 먹으면 밥값은 누가 낼까? 정답은 식당주인이다(144)." 사뭇 진지한 톤의 글 끝에 가벼운 반전의 재미는 쿡쿡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에세이지만 강하게 주장하는 글이다. 뒷받침하는 역사적 사실과 인터뷰 기자로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말의 인용이 설득력을 높인다. 톡톡 튀는 유머도 있어서 딱딱하기만 하지 않고 말랑말랑하다. 즐길 수 있는 에세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삶은 이 시대의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다...(중략).. 무엇보다 나는 이런 양극화된 세상을 바라지 않았다. 이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지금의 기득권적 사고와 행동 원칙을 바궈야 한다. 세상은 절대 스스로 진화하지 않는다. 반드시 노력해야한다.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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