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문장
장훈 지음 / 젤리판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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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정치학 박사과정에 있던 저자는 경험삼아 노무현 대통령 선거과정에 연설비서로 함께 하게 되었는데, 결국 5년을 함께 하며 대통령 퇴임과 함께 퇴직한다. 이렇게 '어쩌다 공무원(어공)'이 되었는데 계속해서 충남도청과 인천시에서 '늘 공무원(늘공)'처럼 별정직 공무원 생활을 이어간다. 이 책은 일산에서 인천으로 출퇴근하며 도시의 일상을 글로 남기고자 매일 한편 한편 쓴 100편을 모은 것이다. 완성된 책을 봉하마을 대통령 묘소에 놓아드리고 싶다고 서문에서 밝히는데, 100편을 쓰고자 한 이유가 노무현 대통령 꿈을 꾸고 나서라고 에필로그에서 밝힌다. 뭉클하다.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생활의 풍경 생각의 발견, 2부 노무현 대통령 막내 필사의 글쓰기 생각쓰기, 3부 사람을 만나는 건 세상을 만나는 것, 4부 어쩌다 공무원의 좌충우돌 공직 수첩, 5부 나는 여전히 잘 살고 싶다. 1부가 늘 반복되는 일상을 낯설게 보는 단상의 모음이라면, 2부는 글쓰는 법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3부에서 5부까지는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며 느끼는 이야기를 적는다.

정제되고 단정한 표현이 운율까지 맞는 듯 리듬이 느껴진다. 군더더기 말이 없으니 호흡으로 조절하며 글을 읽는다. 생각의 흐름도 딱딱 아귀가 맞는다. 아래 '글과 넋두리 사이(54쪽)'를 보자. 마치 광고 문구나 래퍼들의 랩과 같다.

출근길엔 생각이 많고

퇴근길에 고민이 많다.

생각을 표현하면 글이 되지만,

고민을 표현하면 넋두리가 된다.

글을 쓰면 마음이 정리되지만,

넋두리를 하면 마음이 곤궁해진다.

글은 쌓이면 책이 되나,

넋두리는 쌓이면 자책이 된다.

그래서일까...

출근길엔 일이 당기는데,

퇴근길엔 술이 당긴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썼던 사람은 어떻게 글을 쓰는 지 무척 궁금했는데, 2부에서 소상히 알려준다. 사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저자의 글쓰는 스타일을 금방 눈치챌 수 있겠다. 짧은 문장으로 쓴다. 작가 김훈의 글쓰기 스타일처럼 말이다. 단문으로 쓰고, 부사어와 접속어를 절제한다.

어려운 말을 많이 사용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구어체로 써 보라고 조언한다. 얼마 전에 읽은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문장편)>에서 계속 강조한 '소리내어 읽으면서 교정'하는 것과 같은 조언이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의 공통분모인가 보다. 이를 테면, 저자는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서 소리 내어 읽어 보라고 조언한다. 이해가 안되거나 과장이거나 비약이거나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고쳐 쓴다. 괜히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려 하지 말고, 보고를 받는 사람과 대화하듯 작성해보라고 조언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어떻게 쓰는지보다 무엇을 쓸 것인지에 집중하라고 하지만, 사실 저자의 팔딱팔딱 뛰는 표현과 솔직한 생각이 함께 시너지를 낸다. 아무리 내용이 중요해도 표현이 진부하면 와닿지 않는 법이다. 표현이 독창적이고 생각이 논리적이다.

홍보맨은 PR전문가다.

P할 것은 피하고, R릴 것은 알려야 한다.

기자는 취재원이 피할 것을 알아내고

알리고 싶은 것을 의심해야 한다.

(사람이 먼저다; 199)

나도 어느덧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되었다.

꼰대란 말을 싫어하지만 꼰대가 되었고,

아재로서 웃기고 싶지 않지만 아재개그를 한다.

젊은이들이 노는 곳에 가서 물을 흐리고,

눈치 없는 부지런함으로 주변을 불편하게도 한다.

내면 아이; 282

이 책은 짧은 글 속에서 여백을 즐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정제된 글쓰기 스타일 뿐 아니라 선후배의 따뜻한 추천사만큼 따뜻하고 통찰력이 있는 작가의 생각도 좋다.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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