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거칠부 지음 / 더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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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간단히 준비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므로, 무사히 다녀온 그들을 존경한다. 나도 일생에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 늘 히말라야 책이 나를 부른다. 히말라야가 부르면 더 좋을텐데 말이다.

체계적으로 산을 타온 저자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20대에 등산학교에서 독도법, 배낭 꾸리는 법, 야영, 암벽 기본을익히고, 홀로 2박3일 야영산행을 한다. 산도 무섭지만 사람이 무서운 나이였을텐데, 여자 혼자 대단하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산행을 하고, 결국 1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나이 서른 아홉에 히말라야에 가기로 한다. 90일간의 긴 트레킹 후 다시 돌아와 삭발을 하고, 다시 히말라야 횡단에 2년여간을 끝냈다. 한국인 최초의 히말라야 횡단이라고 한다. 무엇이든 최초는 그 영광만큼 위험과 고통이 따를텐데 무엇이 그렇게 저자를 끌어당겼을지 흥미가 밀려온다. 이책은 2018년 봄과 가을에 히말라야 오지를 걸으며 쓴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있다.

10개의 챕터는 10개의 트레킹 코스별로 정리하였는데, 제목만 봐도 두렵다.

챕터1 17시간 30분 만에 눈속에서 탈출: 안나푸르나 3패스,

챕터2 낙석의 공포: 랑탕 간자 라-틸만 패스,

챕터3 길을 잃는 즐거움:마칼루 몰룬 포카리,

챕터4 위험하고 환상적인: 마칼루 하이패스(3콜),

챕터5 가이드와의 갈등: 쿰푸 2패스 1리,

챕터6 최후의 오지 무스탕: 무스탕 테리 라-사리붕 라,

챕터7 다시 안나푸르나로: 아나푸르나 나문 라,

챕터8 구르자 히말을 바라보며:잘자라 패스-도르파탄,

챕터9 춤고, 배고프고: 하돌포 카그마라 라,

챕터10 108호수를 찾아서:고사인 쿤드 18호수.

목차만 읽어도 숨이 차다. 1장부터 5장까지는 트레킹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4월에 시작된 트레킹인데 추위를 견뎌야하고, 눈으로 덮인 사막과도 같은 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고지를 오르락 내리락하며 없는 길을 새로 만들어 가야하고, 가느다란 철사줄에 의지해 빙벽을 내려와야하는 것이 한바탕 사투다. 막연히 히말라야를 상상하며 생길 수 있는 일들이 펼쳐진다. 그러나, 히말라야가 보여주는 모습은 저자의 호기심과 궁금함을 채워주고도 남는다. 6장의 무스탕을 가기 전 60일간 파키스탄에서 빙하 트레킹을 한다. 다시 시작되는 히말라야 트레킹은 전반에 비하면 가이드 없이 비교적 수월해보인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히말라야다. 유명한 안나푸르나의 장관도 사진으로 그 느낌을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다.

히말라야는 인도, 파키스탄, 네팔에서 접근 가능하다. 저자는 네팔의 히말라야를 선택했다. '네팔은 다민족, 다문화국가로 100여개의 민족이 공존하고 있다. 네팔어가 공용어지만, 민족만의 언어를 갖고 있다. 또한 이름이 있는 신들만 300이 넘는다. '나마스테'라는 네팔의 인사말에는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드립니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46).' 표고차가 큰 네팔은 높이에 따라 봄부터 겨울까지 모두 존재한다.

10개의 코스 중에 동행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혼자 걷는다. 동행이 있더라도, 각자 자기 페이스대로 걸어가기 때문에 따로 가는 풍경도 희한하다. 보통 스테프는 가이드 한 명과 셰르파 한 명, 짐을 지는 포터 여러 명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믿을 만한 셰르파 '겔젠'에게 많이 의지하고 신뢰를 하는데, 간혹 지도와 눈 앞에 펼쳐지는 길이 다르면,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믿어야하기 때문이다. 돈이 들더라도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 스테프를 구해야하는 이유다.

하산 거리만 30km, 13시간을 걷는다는 글을 읽으며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왜 갈까? 저자에게 물어보면, 저자는 군데군데에서 '힘들다고 하면서도 다시 가게 하는 이유는 무얼까? 고개를 넘으면 바뀌는 풍경이 궁금해서 히말라야를 걷는다'라고 대답해준다. 그러면서, '일생에서 한 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전부를 바쳐보는 것도 좋다(60)'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히말라야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고민해서일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 글을 보면서 많이 공감한다. '나는 욕을 먹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내키는 대로 살고 싶다. 어차피 뭘 하든, 누구한테라도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관심에 굶주린 사람처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나다움을 지니면서, 적당히 욕도 먹어가면서 그렇게 살고싶다(279)'라고.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들도 많다. 천천히 걸으면 고산병 증상이 없다든가, 네팔인들의 시력은 놀랄만큼 좋아서, 멀리서 누가 오는지 금방 알아챈다. 그리고, 의외의 반찬이 등장하는데, '젓갈'이다. 그저 신기하다. 물론 신라면은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환상방황'이란 계속 전진하고 있지만 실제로 같은 곳을 계속 맴도는 것이다. 또한, 구름은 3천500m이상은 올라오지 않아서, 그 위에서는 구름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단다. 무엇보다, 현지 사장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유럽인을 상대하던 가이드는 한국인과 다니기 힘들지만, 한국인을 상대하던 가이드는 어느 나라 사람과도 같이 다닐 수 있다'고. 뭔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이 갖고 있는 어떤 까다로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여운을 남긴다.

정성스러운 책이다. 각 챕터마다 지도와 진행경로는 물론이고, 각 코스 별 간단한 특징과 주의사항을 두었다. 이 코스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자 자신을 위한 일기인 듯하다. 사진은 정말 장관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히말라야의 모습이 아니다. 사진을 보면서 감탄하기는 처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오지 트레킹이어서 이런 장관을 볼 수 있을까 싶은데,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그 가치를 다하고 있다.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히말라야가 궁금하다면 한바탕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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