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 마흔 넘어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
박대영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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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지름길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다가, 마흔이 넘어서는 돌아가는 길의 아름다움과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삶이 단지 저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이 책에 호감이 간다.

책은 5장으로 되어있다. 앞의 세 장은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길 코스 중 하나를 걸으며, 4장은 역사의 길을 걸으며, 5장은 제주도를 포함한 남도의 섬을 걸으며 보이는 것을 즐기고, 길의 유래를 생각하고, 역사를 생각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적는다.

저자는 대부분의 길을 혼자 걷는다. 계절에 따라 느끼는 것이 가지각색이라 4계절이 있음에 지루하지 않다. 봄에는 버들강아지를 보며 즐거워하고, 여름에는 계곡의 물소리로 더위를 쫓고, 가을에는 억새와 단풍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 속을 걷는다. 간혹 친구와 걷거나 우연한 동행이 생기기도 하지만, 혼자 걸으며 묵직한 사색에 잠기는 것이 좋아보인다.

새삼 우리나라에 걷기 위한 길이 이렇게 많음을 깨닫게 한다. 잘 알려진 제주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을 비롯해서 저자가 걸은 둘레길의 이름은 낯설지만, 존재감을 강하게 보여준다. 파주 감악산 둘레길, 문경새재 소조령길, 강릉 바우길, 태안 해안둘레길, 소백산 12 자락길, 남한강 둘레길, 백화산 둘레길, 함양 선비문화 탐방로, 남한산성둘레길, 강화나들길, 군산선유도둘레길이 있다. 특히 강화나들길 14개 코스 중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은 역사의 부침이 심했던 길이다. 갑곶돈대부터 초지진까지 17km의 둘레길인데, 고려 항몽부터 정묘호란, 근대의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에 이르기 까지 외부의 침입으로 인해 조용할 날이 없었을 곳이다. 이 길이 안스러우면서도 걸어보고 싶다.

길을 걷는 여행자의 흥분된 분위기보다 혼자 걸으며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생각을 표현한 정제된 언어와 문장이 진지하다. 많지 않지만 길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조차 단아하다. 깔끔하고 단정한 책이며 가끔 등장하는 문학적 표현도 절제되어 있다.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저자의 문장을 인용해보자.

"무언가를 하다보면 스스로가 느끼는 승부처(경기나 경쟁 등에서 이기고 지는 고비가 되는 곳. 또는 그런 때)가 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기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가야 한다는 저마다의 당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선선히 받아들이는 것이 승부처에서의 행동요령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기를 쓰고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를 제 스스로 찾아낸다. 살아가는 일이 원래 그렇다. 살다 보면 울고 싶을 때 웃어야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처럼 길 위에서도 당연하다. 그런 과정은 언제나 미답의 곳을 경험하게 하고, 그 열정으로 우리는 정상 정복이라는 감개무량한 성취를 이루기도 한다(271)."

전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잘 정비된 둘레길이 많다. 저자는 혼자 걸었지만, 여럿이 걸어도 좋은 둘레길을 걷고자 한다면 한번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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