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지닌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과거 스토아학파는 물론, 현대 실존주의자들도 인정하는 이 기본적인 자유가 프랭클 박사의 이야기에서는 아주 생생한 의미를 갖는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중에 적어도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보여 준 사람들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는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기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았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의 복잡한 흐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순되는 무의식적 동기?? 배경지식이 없으니 너무 추상적이야

프로이트는 고통을 주는 혼란의 원인을 서로 모순되는 무의식적 동기에서 비롯된 불안에서 찾았다. 반면에 프랭클은 신경 질환을 여러 형태로 분류한 다음, 그중에서 누제닉 노이로제와 같은 몇 가지는 환자가 자기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가 성적인 욕구 불만에 초점을 맞추었던 반면, 프랭클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에 초점을 맞추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존 던은 말했다

˝그 종소리가 누구를 위해 울리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그 종은 당신을 위해 울리는 것이니˝

인간에 관한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일이다.

하지만 수많은 ‘인간‘의 일에
일일이 자신의 입장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입장이 없다면 그것이 곧 무관심을 의미하는 걸까?

존 던이라면 모든 인간의 일에
옳고 그름의 입장을 가져야한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슬퍼하고
고통을 존중하며
잠깐의 숙연함을 가질 수 있다.
이것 또한 하나의 입장이며
지금 내가 찾은 가장 진실된 답이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참 면접 준비 하다 돌아가는 길인데,
책을 읽으니 이런 문장이 보이네

나의 삶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런 자기소개서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