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에서 호기심의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현상 유지에 도전하며
2. 발견, 탐험, 학습을 이끄는 것
나는 이 정의를 읽고 호기심을 의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머리를 써서 생각하는 것이다. 애써 움직이는 것이다. 책에서는 호기심의 반대를 수용이라고 말한다. 수용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것에 가깝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인 것을 최대한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태도가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묻는 것, 왜 이런 상황을 피하는지 살피는 것, 삶에서 어떤 것이 반복되는지 보는 것.
나의 삶에서 자주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다. 불편한 상황에 오래 노출될 때도 그렇다.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릴 때도 그렇다. 그럴 때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머리를 쓰고 싶지 않다. 왜 힘든지 살피기보다 그냥 정신을 빼앗기고 싶어진다.
가장 쉽게 빠지는 것이 유튜브 쇼츠 같은 즉각적인 자극이다.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화면이 주는 자극에 나를 맡긴다. 수동적으로 정신을 빼앗긴다. 스마트폰을 쥐고 계속 스크롤하는 행위는 휴식 없는 잠 같다.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쉬는 것도 아니다. 몸은 쉬는 것 같지만 정신은 계속 피로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피로감과 자괴감뿐이다. 삶의 주인이 스스로가 아닌 느낌도 든다. 적어도 그것이 원하는 삶의 방향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몇 달 동안 중요하게 지키려고 한 태도들이 있었다. 의식적으로 살자. 마음을 열자. 행동에 성의를 담자. 나는 이 세 문장을 내 추구미로 삼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성대로 살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성대로 살면 내가 원하는 인간관계도 만들기 어렵다. 물적인 성취도 영적인 성취도 흐려질 것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변하려면 먼저 나를 의식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