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이어지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연히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되고 명쾌하고도 냉소적인 그의 문체가 맘에 들었다. 우리는 사랑일까도 괜찮았다.

이런 책을 보면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생각을 조종하고 세계를 조종하고 사람들을 조종하고. 여기에서의 조종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끌어들이고 싶다는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앨리스는 평범하지만 또한 평범하지만은 24살의 여성이다. 평범하지만 또한 평범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는 나도 누군가에게는 평범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이 여자가 에릭이라는 남성과 만나게 된다. 둘의 사랑은 전세계의 연인들이 우린 뭔가 달라...라고 생각했다가 도대체 뭐가 달랐었지?하고 의문을 던질 때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필립이라는(필립하고 발음하면 바람이 불고 잎이 굴러다닐꺼 같다. 적어도 에릭이라는 이름보다는 낭만적이다.)남성과의 또 다른 사랑으로 이어지는 대목에서 작품은 끝이 나게 된다.

처음 남자를 사귀는 나로서는 가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연애를 해 본 사람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처음 사귀어서 모를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중간에 나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에 상심한 적이 있다. 그 상심은 큰 것이었고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또 겪고 나니 그 사람과의 저녁 식사, 같이 버스를 타고 시끄러운 라디오를 듣고, 닭꼬치를 먹으면서 웃는 것들도 또 하나의 대화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되자, 내 사랑이 참 소중하다. 라고 혼자서도 중얼거리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으면 금방 잠이 쏟아질 것 같다. 나근나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듯 위로가 되는 글. 어느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다시 결말로 치닫지 않는 그냥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같다.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운문사 뒤뜰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솟아오르는 생의 기운을 얻는다. <민물새우가 튀어오르고>-‘나는 오래 걷는다’, <들판을 재우며 부르는 이 거칠은 바람의 노래를>- ‘바람이 나에게’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니라 삶에 대하여 인정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한 인정이다.

특히 시인은 물고기와 나무를 등장시키는데 이들은 바다와 육지를 상징하는 것들인 듯싶다. 물고기는 큰 바다를 온몸으로 헤엄치며 살아가고, 나무는 깊이 뿌리를 박고 온갖 육지의 바람, 공기를 받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이들은 온몸으로 삶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삶을 이해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가재미에 비유하고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가재미’ 또한, 나무에 비유한다.<나무도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한번 크게 울고 또 한 해 입을 다물고 산다>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에서 나타난다. 이 둘의 이미지는 ‘木鐸’이라는 시에서 <나무는 목탁처럼 눈 뜨고 자는 물고기>라는 대목에서 합쳐진다.

나는 그녀가 어머니인 것 같다. 단지 자신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해주신 어머니. 어머니는 아픈 속에서도 시인을 위로하고 자신은 기대어 울고 싶지만 한번 울어야만 할 때 울고 입을 다물고 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모습.

<나는 하루의 무덤을 보아요 나는 어제의 무덤을 오늘의 무덤을 보아요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 삶 속에서 동시에 죽음을 보고 있는 시인은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다시 한 번 생의 의미를 얻는다. 가슴속에 깊은 샘하나 간직하고 사는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새처럼 짧게 울고’ 다시 날아가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

그러나 누구에게 이야기하면 왠지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막상 이야기를 하면 별거 아닌 것 같은 것. 이것이 자신의 치부가 아닐까.

나에게는 큰 아픔일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별것이 아닌 것. 하지만 그런 것에 무뎌진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도 별것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같이 울고 아파했던 나를 기억한다. 정말 지금은 내가 너무 무뎌진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한 글이다. 공지영의 '고등어'를 보고서도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은 치부라하여 꺼내기를 싫어한다. 그런 행동의 이면에는 자신의 불행이 정말로 그 누군가는 겪어보지 못한 실로 엄청난 것이라 생각하는 면이 있는 듯 싶다. 물론, 나도 그런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의 불행한 이야기를 듣고 울기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턴가 지루해하는 나를 발견했다. 누구나가 겪는 일을 참으로도 지겹게 이야기하고 있구나. 어느부터인가 그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질 않았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영혼에. 두 사람의 마음의 길에 질투를 느꼈다. 그 마음의 길에 놓여진 두 사람의 사랑도. 그 사랑에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아직까지 살아있음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자식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려고 애를 쓰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울컥 했다. 용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죽은 자식때문이라는 것을. 자식을 편안하게 쉬게 하려는 어머니의 모습. 그 온전한 사랑에 기도가 하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 9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