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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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태준 시인의 시를 읽으면 금방 잠이 쏟아질 것 같다. 나근나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듯 위로가 되는 글. 어느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다가 다시 결말로 치닫지 않는 그냥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같다.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운문사 뒤뜰 은행나무’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 솟아오르는 생의 기운을 얻는다. <민물새우가 튀어오르고>-‘나는 오래 걷는다’, <들판을 재우며 부르는 이 거칠은 바람의 노래를>- ‘바람이 나에게’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니라 삶에 대하여 인정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한 인정이다.

특히 시인은 물고기와 나무를 등장시키는데 이들은 바다와 육지를 상징하는 것들인 듯싶다. 물고기는 큰 바다를 온몸으로 헤엄치며 살아가고, 나무는 깊이 뿌리를 박고 온갖 육지의 바람, 공기를 받으며 살아간다. 따라서 이들은 온몸으로 삶을 느끼고 그 속에서 삶을 이해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가재미에 비유하고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가재미’ 또한, 나무에 비유한다.<나무도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한번 크게 울고 또 한 해 입을 다물고 산다> -‘감나무 속으로 매미 한 마리가’에서 나타난다. 이 둘의 이미지는 ‘木鐸’이라는 시에서 <나무는 목탁처럼 눈 뜨고 자는 물고기>라는 대목에서 합쳐진다.

나는 그녀가 어머니인 것 같다. 단지 자신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해주신 어머니. 어머니는 아픈 속에서도 시인을 위로하고 자신은 기대어 울고 싶지만 한번 울어야만 할 때 울고 입을 다물고 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모습.

<나는 하루의 무덤을 보아요 나는 어제의 무덤을 오늘의 무덤을 보아요 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어떡하나요 어떡하나요’, 삶 속에서 동시에 죽음을 보고 있는 시인은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그래야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다시 한 번 생의 의미를 얻는다. 가슴속에 깊은 샘하나 간직하고 사는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새처럼 짧게 울고’ 다시 날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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