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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환 시대의 한국 외교 - 포스트 팍스 아메리카나와 우리의 미래
이백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전에 ‘최명길 평전’을 읽었었습니다.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을 읽고 또 영화를 보면서 최명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교조적인 성리학이 지배하는 상황 속에서 현실주의라고 불 수 있는 그의 활약은 현재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서 더욱 복잡해진 국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하나의 길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즉 최명길을 다루는 600여 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여 여러 외교 문제에 직면한 현실 속에서 책임감, 유연함,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판단력을 갖춰서 새롭고 건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외교가이자 정치인의 롤모델로 최명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명길 평전을 읽고 현대 우리 외교를 다루는 이 책을 읽으니 과거 우리 역사가 오버랩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의 청나라처럼 미국 일국체제에서 중국이 G2로 대두하고 있고 북한 변수로 가뜩이나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겹쳐 좌불안석이 된 한국 외교가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저자는 냉전 이후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소프트 파워를 기반으로 세계를 이끌던 미국이 패권을 쥐던 평화로운 시대 ‘팍스 아메리카나’가 막을 내리고 있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변화하는 미국의 국제 전략에 기반하는데,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국제 질서를 잡던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로 자국 중심주의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이 새로운 국제 전략인 ‘선택적 개입’을 피게 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식을 알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앞으로 다가올 국제 질서에서 어떤 국가가 패권을 쥘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강대국은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범과 원칙을 해석하고 국제 사회를 위한 의무나 비용은 피하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이에 있는 대한민국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저자는 우선 내부의 위협인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우리 내부의 안보 문제이기도 하나, 대외적인 위험 요소로도 자리 잡고 있으므로, 저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시작으로 남북한 화해 및 경제 협력을 이룬 뒤, 동아시아의 무역 허브가 될 반도의 모습을 그려야만 한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저자는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중견국들과 연대하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과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이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방적인 정책을 대항하기 위해서 중견국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연대가 없다면 강대국의 ‘분리와 지배’ 책략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고, 일대일 형식으로 협상에 임한다면 중견국은 반드시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강대국의 정책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중견국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유리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와 동시에 강대국의 움직임에도 쉽게 요동치지 않으려면 우리만의 방향성이 필요한데, 방향을 잡는 과정에서 다른 국가의 지지와 명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 세계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규범과 원칙에 입각한 국제 질서는 분쟁을 억제하고 안정성을 증가시키면서, 국제 사회에서 협력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대한민국 국가 위상에 알맞은 ‘실물 크기 외교’를 피면서 국제 정세의 흐름을 부지런히 읽고, 어떤 질서가 등장하더라도 언제든 이에 대처할 탄력적인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우리나라의 외교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