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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싫어하는 말 - 얼굴 안 붉히고 중국과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
정숙영 지음 / 미래의창 / 2019년 8월
평점 :
며칠 전 엑소 레이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며 삼성전자와의 모델 계약 파기를 선언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레이의 중국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레이 측은 삼성전자 공식 글로벌 웹사이트 국가 표기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우리나라(중국) 주권과 영토 보전을 모호하게 한 행위로, 중국 동포의 민족 감정을 엄중히 손상시켰다. 강한 유감을 표시하며 절대 용인할 수 없어서 모델 계약을 파기 한다고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실제 삼성전자의 글로벌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레이가 언급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될 만한 요소가 크게 발견되지 않았지만, 사이트 하단 ‘당신의 나라와 지역을 방문하세요(Visit Your Country or Location)’ 항목에서 중국, 대만, 홍콩이 독립적으로 표기됐고, 레이가 이를 문제 삼은 듯합니다. 삼성전자도 이러한 논란을 의식했는지 ‘나라와 지역(Country or Location)’에서 ‘나라(Country)’를 빼고 ‘당신의 지역을 방문하세요(Visit Your Location)’로 수정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크게 의식을 못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중국에게는 커다란 금기로 남아서 중국인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언론과 직접 부딪치며 중국과 소통하는 실제적인 노하우를 쌓아온 저자는 이 책에서 중국이 아주 민감해하는 주제와 금기어들을 소개하고, 중국이라는 나라와 어떻게 대화할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레이의 사례는 이 책의 1장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서 그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얼굴 안 붉히고 중국과 대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다소 특이한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중국은 고난의 근현대사, 독특한 정치 경제 체제, 폐쇄적인 언론 환경으로 인해 정치, 사회적 금기가 많은데, 저자는 14년간 중국어판을 운영하면서 이런 수많은 레드라인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그 금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중국인과 얼굴을 붉혔던 경험들을 토대로, 민감한 사안임은 기본 공식처럼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어떻게 디테일하게 적용할지는 여전히 응용문제 풀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해 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참고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관통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고통스러웠던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일수록 현재 더 큰 금기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즉 최근 중국인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외국 패션 브랜드를 향해 ‘모욕당했다’고 거세게 항의하거나 우리가 그린 한눈에 봐도 호감이 안 가는 변발 중국인 삽화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세계 최강자였던 청나라가 한순간 서구 열강에 짓밟히다 동네북이 되었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처절한 국민당과의 내전으로 피 흘리며 이뤄낸 중국 통일인데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간주하는 표현은 용납하기 힘듭니다. 나아가 권력자까지 거리로 내동댕이치고 자식이 부모를 고발해 죽음에 이르게 한 문화대혁명의 참담한 기억은 여론이 극단적인 한 방향으로 흘러 과격해지는 것을 몹시 경계하는 심리상태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심리 상태가 만들어 낸 금기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어 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톈안먼, 태자당, 달라이라마, 파룬궁 등은 대표적 금기어이므로 이런 예민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혹여 거론할 때는 완곡어법이나 중성적 단어를 쓰는 것이 좋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도 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성장한 현재에서 좋든 싫든 중국과 관계를 매우 중요합니다. 외국인이 알기 힘든 현대 중국인들의 마음을 그들의 금기를 통해서 이해해보려는 분들이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