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도감
박우진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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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과학계는 인간을 '별의 자식'이라 부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탄소는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별의 조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나를 지워간다.

별의 조각이, 스스로 빛을 끄고 있다.

만화 한 컷이 이 사실을 꺼내들었다. 장황한 설명도 없이. 그래서 더 깊이 박혔다. 애써 외면했던 49개의 솔직한 민낯들 그 안에 내 얼굴이 있었다.

나를 지워가는 바보 같은 노력은 이제 멈추자.

별은 누군가의 시선을 기다리며 빛나지 않는다.

그냥 빛난다.

나를 지우며 살다 보니, 어느새 인간실격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



인상 깊은 구절

"밀물처럼 다가오던 부모님의 사랑을 우리는 썰물처럼 흘려보냈다. 이제야 깨닫는다. 그 물결이 얼마나 깊은 사랑이었는지를." p33

'헤맨 만큼 내 땅이다'라는 말처럼 어릴 적 자신의 열정을 되짚어가며 기초부터 다시 임하는 친구의 빛나는 모습을 상상했다. 비록 완벽한 무대 위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서툰 발짓 끝에 마침내 가장 아름다운 자신을 마주하는 그 찰나의 순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꿈을 대하는 가장 성숙한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p152

총평

《인간실격도감》 그림이 많은 책이라 가볍게 펼쳤다.

큰코 다쳤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손가락이 느려졌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할머니가 시장을 본다. 손주 온다고 진수성찬을 차린다. 손주는 게임이 바쁘다며 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돈을 이체한다. 마지막 장면. 정성껏 차린 음식 위로 파리가 날아다닌다. 그 음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냉장고 속에 멈춰 있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그렇게 조용히 썩어간다.

책을 덮고 싶었다. 나도 그 손주였던 적이 있어서.

《인간실격도감》은 성공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지워버렸던, 혹은 잃어버렸던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림이 정교하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표정 하나하나가 더 살아 숨 쉰다. 투박한 선 하나가 어떤 정교한 문장보다 깊이 찌른다. 고수는 힘을 빼는 법을 안다.

오늘 놓친 부재중 전화 하나. 그 안에 엄마의 하루치 걱정이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쏟아부었던 오늘을 멈춰야 한다. 노를 혼자만 젓고 있다면 결국 제자리를 맴돈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꺾여버린 날개의 흔적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남의 자유를 억압한 적 있는가. 통제가 안 된다고 화를 냈던 적 있는가. 그 권력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정작 휘두르는 사람만 모른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학교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보다 조건을 먼저 보고, 마음보다 현실의 무게에 먼저 시선이 머문다. 오직 마음 하나로 충분했던 그 시절을 잃고, 현실에만 살다 보니 어느새 인간실격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건 결국 하나다.

더 성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을 제대로 보는 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 찌질한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는 것.

심플하다.

여운은 오래간다.

오랜만에, 읽고 나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

책이 던지는 질문

남의 불행을 땔감 삼아 나의 외로움을 태우는 법 p111

누군가를 깎아내릴 때, 잠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게 유대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타인의 불행을 땔감 삼아 잠시 외로움을 태운 것뿐이다. 불이 꺼지면 남는 건 서로를 겨누며 엮어버린 차가운 철망뿐이다.

미워할 대상을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시선. 가장 먼저 병드는 건 상대가 아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먼저 썩는다. 세상을 희망으로 보는 대신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만들어버리는 것, 그 시선의 주인은 결국 나다.

붓다는 말했다. 불안을 주는 대상은 땔감이고, 화는 불이라고. 우리가 계속 땔감을 던지는 한 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멈춘다는 건 의지가 아니다. 더 이상 땔감을 집어 들지 않는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건 포기가 아니다. 불에게 연료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만으로도 우리는 용기를 얻는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땔감을 내려놓는 순간, 불은 스스로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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