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도감》 그림이 많은 책이라 가볍게 펼쳤다.
큰코 다쳤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손가락이 느려졌다.
첫 장면부터 강렬하다.
할머니가 시장을 본다. 손주 온다고 진수성찬을 차린다. 손주는 게임이 바쁘다며 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돈을 이체한다. 마지막 장면. 정성껏 차린 음식 위로 파리가 날아다닌다. 그 음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냉장고 속에 멈춰 있다. 전해지지 못한 마음은 그렇게 조용히 썩어간다.
책을 덮고 싶었다. 나도 그 손주였던 적이 있어서.
《인간실격도감》은 성공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우리가 지워버렸던, 혹은 잃어버렸던 마음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책이다. 그림이 정교하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표정 하나하나가 더 살아 숨 쉰다. 투박한 선 하나가 어떤 정교한 문장보다 깊이 찌른다. 고수는 힘을 빼는 법을 안다.
오늘 놓친 부재중 전화 하나. 그 안에 엄마의 하루치 걱정이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을 쏟아부었던 오늘을 멈춰야 한다. 노를 혼자만 젓고 있다면 결국 제자리를 맴돈다.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꺾여버린 날개의 흔적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남의 자유를 억압한 적 있는가. 통제가 안 된다고 화를 냈던 적 있는가. 그 권력이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정작 휘두르는 사람만 모른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학교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는 사랑보다 조건을 먼저 보고, 마음보다 현실의 무게에 먼저 시선이 머문다. 오직 마음 하나로 충분했던 그 시절을 잃고, 현실에만 살다 보니 어느새 인간실격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건 결국 하나다.
더 성공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가진 것을 제대로 보는 눈.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 찌질한 내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는 것.
심플하다.
여운은 오래간다.
오랜만에, 읽고 나서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