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토의 예토전생. 페이트의 성배전쟁. 종말의 발키리. 천하제일. 시구루이. 장르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다. 그런데 뿌리가 같다. 60년 전, 일본 신문에 연재된 소설 한 편으로 전부 거슬러 올라간다.
야마다 후타로의 《마계전생》이다.
시마바라의 난이 진압된다. 기독교 반란군은 패배했고, 지도자 아마쿠사 시로는 전사했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죽은 자들이 돌아온다. 그것도 초인적인 힘을 품고.
부활한 명단이 가관이다.
미야모토 무사시. 아라키 마타에몬. 야규 집안의 검객들. 호조인 인슌.
당대 최강의 검사들이 원한을 안고 마인으로 전생한다. 이 패거리에 맞서는 단 한 명 외눈의 검호 야규 쥬베이.
흑막이 기독교 세력이라는 것도 파격이다. 서양 소설이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설정. 임진왜란 선봉장 코니시 유키나가의 가신 모리 소이켄이 사악한 술법으로 죽은 자를 되살린다. 부활의 조건은 두 가지 세상에 강한 미련, 그리고 여자의 몸을 매개로 한 금기의 의식. 쥬베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준비한 여자가 셋이다. 클라라, 베아트리스, 프란체스카. 세례명이다.
권력 구도도 치밀하다. 막부를 전복하려는 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열 번째 아들. 늦게 태어나 권력에서 밀려난 자의 야심에 음모가 파고든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이는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의 진짜 맛이 난다.
전생한 빌런들의 최후도 걸작이다.
한 명씩 쥬베이에게 털린다. 가오 때문에 일대일을 고집하다가.
미야모토 무사시는 막판에 같은 편을 배신하고 막부에 고발한다. 의리도 없다.
2권에 접어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1권의 역사 해설이 뼈대였다면, 하권은 그 위에 허무주의가 피어오른다. 역사 속에서 천수를 누렸던 자들이 추악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쓰러진다. 작가의 시선은 인간의 존엄보다 육체의 파괴에 머문다. 관능과 잔혹함의 결합은 말초적 자극이 아니다. 패전 직후 모든 가치가 붕괴하는 걸 목격한 세대의 냉소다. 작가에게 신체란 죽음과 함께 썩어 없어질 단백질 덩어리에 불과했다. 생명의 탄생이어야 할 것이 괴물 수육의 공정으로 치환되는 대목은, 불쾌함을 넘어 지독한 비애를 남긴다.
발상은 혁신이었다.
시대를 막론한 최강자들을 불러내 드림매치를 붙인다.
이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가 일본 서브컬처의 판도를 통째로 바꿨다. 페이트는 성배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구조를 계승했고, 후속작엔 유이 쇼세츠가 직접 등장하기까지 한다. 오마주를 넘어 헌정이다. 나루토의 예토전생도 마찬가지 죽은 강자를 되살려 싸우게 만드는 그 공식의 원조다.
억압받은 자의 원한이 집단으로 부활하는 구조. 권력 유지가 곧 새로운 폭력이라는 역설. 욕망이 휩쓸고 간 자리엔 화려한 승리 대신 지독한 허무만 남는다.
그 발상이 60년을 건너왔다.
지금도 살아있다.
읽지 않았다면, 당신은 원조 없이 파생만 봐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