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이해가 아닌, 경험으로 통과하는 삶"
헤르만 헤세 저자는 두 인물을 통해 삶의 두 방향을 보여준다. 고빈다는 외부로 완성되는 길을, 싯다르타는 내부로 해체되는 길을 걷는다. 고빈다는 이해를 끝까지 추구했고, 싯다르타는 경험을 끝까지 추구했다. 삶은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둘 다 필요한 전체 구조다.
고빈다는 깨달음을 보는 사람이고,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살아버린 사람이다. 고빈다는 오랜 시간 고타마 붓다에게 배움을 얻다가 오랜 시간 이후 친구 싯다르타를 만나고서야 진정 깨달음을 얻는다. 고빈다는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받아들이는 구조는 끝까지 열려 있었다. 그러니 고빈다는 실패가 아니다. 끝까지 인간적인 길을 충실히 걸은 자다. 둘은 "같은 순간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방식이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배움의 끝은 결국 경험으로 넘어가야 한다. 고빈다는 싯다르타의 이마에 입맞춤하는 순간, 비로소 이해가 아닌 체험으로 건너간다. 설명 없는 경험을 끝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답을 말하지 않고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그 두 사람이 하나의 흐름으로 보이는 순간, 둘이 처음부터 하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싯다르타는 강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아들로 인해 흔들린다. 그 이유는 고통이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고통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포함된 전체를 보는 상태에서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에 경계는 계속 생겨난다. 싯다르타처럼 인간을 초월한 듯 보여도 결국 인간이다. ≪싯다르타≫는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계가 생기는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삶에는 고정된 것이 없다. 형태는 바뀌지만 존재는 계속된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보는 바다는 다르다. 달라진 것은 바다가 아니라, 바다를 보는 나다. 오래전 읽었던 싯다르타와 지금은 참 다르게 느껴진다. 이해하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고빈다처럼 남이 만들어놓은 진리를 배우는 것인가, 싯다르타처럼 내가 직접 진리가 되는 경험인가.
싯다르타는 버리는 연습이 아니라 충분한 경험을 통한 통과로 삶을 보았다. 남의 깨달음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며, 이런저런 경험을 겪어내는 싯다르타를 응원하게 된다. 돌아가는 (실패, 방황, 집착)길도 결국 하나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싯다르타는 처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닫지 않았다. 명상, 숲속 수행, 고타마의 가르침을 거쳐, 어느 순간 나만의 선택을 하게 된다. 현실의 우리도 마찬가지다. 모범생의 길과 모험생의 길이 뒤섞여 있다. 남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지 말고, 자기 삶에서 직접 확인해야 한다. 싯다르타는 계속 의심하고, 계속 확인하고, 끝까지 경험한 사람이었다.
욕망을 실험하던 싯다르타도 이겨내지 못해 더 원하고, 더 집착하고, 반복되는 상황을 겪는다. 결국 '끝이 없네'를 느끼며 하나의 흐름을 인지하게 되는 그 순간이 소름 돋는다. 경험하지 않으면 미련이 남는다. 진짜로 무언가를 내려놓지 못하게 된다. '아, 이건 내가 찾던 게 아니구나' 느꼈을 때, 비로소 찾지 않게 되고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버리는 건 경험한 뒤에만 가능하다. 버린다는 것은 이해의 결과가 아니라 체감의 결과다. 충분히 경험하면 저절로 버려진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포화로 완성된다. '이거 더 해도 바뀌는 게 없다'고 느낄 때가 포화 상태다. 결심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붙잡히지 않게 되어 내려놓게 된다. 보름달이 되고 난 후 초승달이 되는 이치다.
양질의 전환으로 경험이 누적되면 임계점을 돌파할 줄 알았다. 그런데 싯다르타를 읽고 보니, 이해가 쌓여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이 사라지는 순간 안목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분석이 아니라 직관으로, 깨달음은 성취가 아니라 상태의 해체다.
모든 경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깨닫는 방식 자체, 즉 구조가 중요하다. 양이 아니라 보는 방식이 핵심이었다.
파도는 계속 생기지만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싯다르타가 말하는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지금 여기에 동시에 존재한다. 나는 계속 변해왔지만 나는 사라진 적이 없다. 문제는 없어지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보는 '나'가 바뀌면 된다.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면 된다. 고통도 쾌락도, 실패도 성공도 하나의 흐름으로 보인다. 행복은 결코 혼자 오지 않고 우여곡절 속에 온다.
아는 것과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다르다. 싯다르타를 보면서, 같은 삶을 얼마나 다른 깊이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웠다. 내가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을 보게 되는 것. 깨달음조차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흘러가고 있던 것을 하나로 보는 것이다.
직접 겪은 것만이 내겐 진짜가 된다. 내려놓는 연습이 아니라, 삶을 충분히 경험하다 보면 저절로 놓아지게 된다. 붙잡지 않게 된다.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보게 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