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니체와 정약용
김이율 지음 / 미래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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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문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줄 요약

니체가 말한 '극복'의 힘과 정약용이 남긴 '돌봄'의 온기가 한 사람 안에서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따뜻해진다.

베테랑 카피라이터 김이율 작가가 '영원회귀'의 니체와 '목민심서'의 정약용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서양과 동양, 시대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의 목소리를 나란히 놓으며, 자기 자신을 끝까지 극복해 나가는 힘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동시에 건네는 책이다.


인상 깊은 구절

배움은 재료를 모으는 것이고, 생각은 그 재료로 요리하는 것입니다. 재료만 쌓아두고 요리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고, 요리하려 해도 재료가 없으면 아무것도 만들 수 없습니다. 둘은 언제나 함께 필요합니다. p53

익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위험을 감수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짐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비행을 감당할 수 있는 날개를 건네는 글입니다. p159

생각이 다시 질문이 될 때, 삶은 다른 방향으로 열릴 수 있습니다. 결론은 지키기 위한 사유를 멈추고, 자기 자신을 흔들 수 있는 사유를 허락할 때, 생각은 다시 살아납니다. p223

총평

칼날과 붓끝이 만나는 자리 ≪어쨌든, 니체 × 정약용≫

서양과 동양, 시대도 언어도 다른 두 사람이 한 권의 책에서 만난다. 니체는 날 선 일침으로 안주하는 우리를 흔들고, 정약용은 차분한 붓끝으로 사람의 도리를 일깨운다. 얼핏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깊이 읽다 보면 두 사람이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온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놓지 않는 것.

책을 덮고 나서도 한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자만이 자신을 넘어선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 편히 앉아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철학자든 구루든 위대하다 불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사유의 시간을 붙들고 살았다는 사실을 ≪어쨌든, 니체 × 정약용≫ 책이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정약용의 문장도 묵직하게 와닿는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면 그날 해의 일을 잃은 것이라는 말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 작은 첫걸음이 만 보 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의 꾸준함에 대한 가르침은 니체가 말하는 위버멘쉬, 즉 초인이 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처럼 읽혔다. 재능 있는 사람이 게으르면 평범한 결과를 내고, 평범한 사람이 꾸준하면 위대한 결과를 낸다는 것. 초인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 위인 모두 삶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적지가 아니라 잠깐씩 들르는 간이역 하나하나가 중요하다는 것, 성공으로 향하는 방향 그 자체가 우리를 설레게 해야 한다는 것. 비를 피하려는 자는 무지개를 말할 수 없다는 니체의 일침은, 편안함보다 모험을, 인정받는 삶보다 자신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다. 작가는 두 사람의 기준을 전하고 난 뒤, 매번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독자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준다. 답변 후 더 좋은 질문을 반복하며 사유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구조다. 지혜만 있고 인자함이 없으면 경박해지고, 인자함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고지식해진다는 정약용의 말처럼, 어느 하나만으로는 살아가기 어렵다. 물처럼 유연할 때와 산처럼 단단할 때를 아는 것, 그 균형이 결국 삶의 도리다.

정약용이 주장한 실용적 학문도 마음에 걸렸다. 참된 학문은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말. 책을 읽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그것이 진짜 내 삶에 연결되고 있는가. 단순히 아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촉구한다.

깊이는 속도에서가 아니라 경험을 견디는 방식에서 생긴다. 이 한 문장에 가장 많은 밑줄을 그었다. 자극에 너무 많이 노출된 채, 강한 말에만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운명을 원망이 아닌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을 견디는 것, 그것이 결국 니체가 말한 운명애(아모르 파티)이고, 정약용이 말한 삶의 도리다.

동서양의 두 목소리는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기보다, 끝까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초인이 되는 길이고,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길이다.

책이 던지는 질문

사실이란 해석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만나는 세계는 언제나 해석을 거친 세계라고. p90

세계는 다면체다. 어느 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고, 같은 사건도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이란 해석으로부터 분리된 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우리가 만나는 세계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을 거친 세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절대라는 것은 없다. 한 시대의 진리가 다음 시대에는 악으로 불리기도 하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낯설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해석은 단일하지 않고, 그 다양함 속에서 우리는 사유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 사유도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도 언제든 수정되거나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경직된 확신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유다. 오늘 하루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체계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 그 작은 질문이 세계를 더 입체적으로 보게 만드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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