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우리 모두에겐 욕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스럽다.
내가 가진 그릇보다 많은 것을 차지하고자 경쟁하고 승리하고 욕심을 부리는 순간 우리는 행복과 멀어지게 된다.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성공은 행복의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하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행복할까? 나머지 요소들을 모두 희생한다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욕망이 그릇을 넘기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걱정'이라는 불행이 찾아온다.
적당히 고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소비주의, 광고 등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자.
잘 사는 삶은 매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 많아질 때이다.
돈은 탐욕이다. 돈이 없던 사람이 1천만 원만 있으면 행복하겠다고 상상하며 1천만 원을 모으면 1억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지고 막상 1억을 모으면 10억을 바라게 된다. 나 자신을 알고 내 그릇을 넘어서는 욕망을 줄이고 자신의 본성에 만족하는 지족상락 마음이 중요하다.
삶은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자'가 되었을 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창조가 되면 된다.
매일 반복되는 삶을 사는 우린 '영원회귀'에서 쳇바퀴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심력 속에서 삶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
그 안에서 나 자신답게 살아갈 의미를 찾으면 된다.
아침마다 마시는 모닝커피 위에도, 퇴근길에 들이키는 한 잔의 맥주 위에도 존재한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 내려갈 때 발견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몰라보고 없는 것을 찾는 것을 멈추고 내가 가진 것들 중 유난히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인문학은 왜 내가 피로사회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성과주의에 목을 매달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압력으로부터 탈출할 힘을 길러야 한다. 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힘들다면 인문학 명저를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본 소비주의에서 사는 우리는 계속 '소유하는 삶'을 살도록 주변에서 재촉한다.
계속 소비하고 원하던 물건을 소유한다고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기 자신의 위대함보다 비참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파스칼이 말하는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 끊임없이 나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아모르파티'
내게 주어진 것들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어야 한다.
단순하고 겸손한 삶이 바로 즐거운 삶이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함이 그대를 평안하게 만든다.
주변에서 방해해도 자기 삶의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무쏘처럼 걸어가자.
괴롭히는 것은 외부 요소보다 나 자신이 가진 생각과 판단에 기인하는 것들이 더 많다.
레몬이 쓴가 그럼 안 먹으면 된다. 길에 가시덤불이 있다면 돌아가면 그만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잊고, 통제할 수 있는 그 무언가 행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왜 그런 것들이 있냐고 묻지 말자.
'도'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창조의 리듬이다.
원하는 것과 내버려두는 것의 사이의 어디쯤에 자신이 서 있는지 느껴야 한다.
항상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고 세상이 그냥 펼쳐지도록 내버려 두자.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 너무 열심히 노력하지 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자.
완벽하게 무언가를 준비했더라고 타이밍과 외부 요소로 틀어지는 게 삶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일어나면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배울 점과 내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수행하면 그만이다.
세상을 너무 깊이 이해하려 애쓰지 말자.
군자는 태평하면서도 너그럽고, 소인은 늘 걱정에 휩싸여 있다는 말이 와닿는다.
여르미(류지아) 작가가 뽑아준 인문학 50권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데 용기가 생긴다.
당연한 삶은 없지만, 지근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인문학을 통해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책이 삶을 구원해 줄 거라 믿는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할 힘을 ≪마흔에 읽는 인문학 필독서 50≫ 얻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