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 -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편견에 대하여
저스틴 그레그 지음, 김아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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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인간이 만든 도덕성은 날 선 칼이 되어 돌아온다.

도덕성에 대해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옳은 일이고 공동에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보니 우리가 말하는 도덕성이 진정 올바른 것을 취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예로, 동물이라는 범주 안에 쥐, 새 등은 제외되어 실험체로 활용되고 있다.

도덕성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개고기를 먹는 것을 인정하는 나라와 인정하지 못하는 나라처럼,

일상을 살아가면서 규범 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지거나 질문을 한 적이 없다.

독립된 주체로서 본능보다 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니체가 일각돌고래라면≫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내 삶을 뒤흔든다.

동물도 인간처럼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가 잘못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정신 단단히 차리고 삶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해야 한다.

인상 깊은 구절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의 고통스러운 인생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무언가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하는 일이 반드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p19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은유와 환유, 의인화의 고정되지 않은 주인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시적으로, 그리고 수사적으로 강화되고, 이전되고, 장식된 인간관계의 합이며, 오래 사용된 뒤에는 사람들에게 고정적이고 규범적이며 구속력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리란 우리가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은 환상들이다. p83

니체가 말했듯 "과거와 미래의 울타리 사이에 있는 행복한 맹목 속에서 노닐지" 않는다. 그 정도로 동물들이 무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렇듯 어느 정도 지식을 갖췄음에도 동물들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기에 우리만큼 고통을 받지 않는다. p155

우리는 보편적인 규범 체계를 극단까지 끌고 가 다른 집단의 사회적 행동을 통제하고 제한해 오곤 했다. 반면에 동물들은 우리보다 덜 세련된 규범 체계를 가졌지만 훌륭한 삶을 살아간다. p197

철학자 수전 랭거가 말했듯이, "느끼는 것은 무언가를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동물들이 애초에 주관적인 경험을 진화시킨 이유다. p224

호모사피엔스라고 해서 다른 종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쾌락을 경험할 가능성이 딱히 많은 것은 아니다. 언어, 수학, 과학 등에 대한 우리의 능력이 어떤 선물을 주었든 간에 나의 삶이 내가 키우는 닮의 삶보다 더 많은 쾌락으로 채워져 있다는 증거는 없다. p308

총평

모든 동물들이 가치를 두는 한 가지는 '쾌락의 극대화와 불행의 최소화'라는 사실

니체가 일각돌고래였다면,

허탈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고 더 좋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저스틴 그레그 생물학과 교수 의견에 동의한다.

앞장에 "단순한 동물들은 결코 이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진정으로 바보 같은 짓을 하려면 사람이어야 한다." 문장처럼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출간 이후 우울증, 환각, 자살에 대한 충동이 심해지고 정신적 쇠약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일각돌고래였다면 죽음에 대해 니체처럼 정면돌파 하지 않고 멈추었을 텐데.

여러 가지 동물과 사람을 비교하는 과정들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물들은 동성애가 많다는 사실도 놀라운 사실을 접하게 되기도 하고,

인간의 지적 우월함은 환상이고 착각이며,

인간은 거짓말 때문에 자멸하고 말 것이라는 사실과 동물도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지만 동물처럼 수용하지 못하고 있고,

인간이 만든 도덕성은 침팬지가 습격해 오는 수컷들을 죽이는 것보다 날카로운 칼이 된다.

인간의 시간 여행 능력과 인간만이 예외라는 가정이 잘못되었다는 의견과 동물들도 인간과 얼추 같은 패턴을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300 페이지 이후 동물은 쾌락의 극대화라는 문장을 읽으며 인간은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가며' 장 제목 <니체 씨, 우리 이제는 좀 더 겸손해져야겠죠?> 읽고 다시금 겸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동물과 비교해서 인간이 나은 점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상력과 인간관계에 대한 것만 뺀다면 과연 동물 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니체가 말하는 소가 오히려 인간보다 더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문장이 왜 이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걸까.

소는 사람보다 더 많은 즐거움과 쾌락을 경험하고 있다.

쾌락을 늘리고 불행을 줄이는 일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게 된다면 보다 행복을 발견하는 건수가 증가될 것이다.

"왜"라고 계속 물으며 우리가 가진 지성에 대한 믿음에 의문점을 던지는 저스틴 그레그 작가에게 감사하다.

동물학자의 대담하고 놀라운 도발로 니체 사상과 독자가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흔들기 충분하다.

책이 나에게 하는 질문

니체는 일각돌고래가 아니었다. 그래서 죽었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인간이라는 우월함과 지능, 도덕성에 극복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극복한 나머지 정신과 신체 불균형으로 신이 빨리 찾아온 것은 아닌지.

작가가 좋아하는 일각돌고래였다면 병원에서 10년을 허송세월 하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책을 읽으며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은 인간의 감옥이자 내가 살고 있는 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는 기억이라는 감옥을 깨닫자마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느낀 것이 아닐까.

≪데미안≫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자신만의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니체는 평화보다는 투쟁과 전쟁을 가치 있게 생각했다.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삶을 끝까지 정면으로 맞서 싸우던 그가 승리를 떠나 즐기는 상황으로 승화되던 참에

매독이 뇌로 전염이 되면서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된 것은 아닌지, 한 번에 쾌락이 불운으로 작용하게 된 사실에 오만하지 않아야겠다.

단순한 삶의 해결책이 아닌, 자신만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인간은 동물보다 인과관계와 상상력이 뛰어나다.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동물보다 수준이 높다.

그만큼 너무 많은 자원과 지식에 둘러싸여 살다가 불행해진 것이 아닐까.

물질적인 것이 아닌 단순하고 간단한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동물처럼, 자연처럼, 지나친 것 보다는 약간 부족함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자.


'타인의사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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