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순간 손으로 움켜쥐지만 곧 사라질 보석처럼,
인생도 순간 손으로 움켜쥐면 곧 사라지면서 풀기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그려낸다.
그 빛나는 반사광 안에 숨기고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산은 어둠과 밝음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곧은 길이 있고 울퉁불퉁함 길도 있다.
봉우리가 높으면 골짜기고 깊고. 모든 생물을 품 안에 안고 있으면서 홀로만 높지 않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긴 시련기를 끝내고 부활한다.
우리의 인생도 다채로운 색을 가진다 해도 고난은 언제나 찾아온다.
산처럼 고난을 미래를 위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자.
짐을 한가득 가지고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사람들,
정상에 잠깐 머무르고는 다시 내려갈 것인데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그게 무슨 소용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도대체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을 찾아 등반하는 걸까?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시시포스처럼 바위를 계속 올리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힘든 작업이 아니라 즐기는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힘들어 보이는 모습 속에서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이 깃드는 행복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인생이란 처음으로 시선이 닿는 곳으로 자신의 몸을 이끄는 것이다.
삶에서 땀을 흘리는 것은 기본이며 기복이 심한 곳을 지나거나 왔던 길로 후퇴하고 멀리 우회하고 방향을 틀어서 마침내 정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비상하는 건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한, 꾸준함에 대한 승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에서는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소박한 목표로 스스로를 제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끔은 미끄러지기도 하고 두렵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과해야만 하는 갈라진 틈도 이겨내야 한다.
산은 우리의 취약점과 강함을 깨닫게 해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을 오를 준비가 되어야 한다.
끈기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체력과 능력을 기르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과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관점을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움직임이라는 동사가 따라야 한다. 삶도 이와 마찬가지다.
정상을 가기 위해 오르는 동안 소에게는 나오는 모든 것은 축복이다.
소의 소변을 아유르베다 약품에 사용할 정도로 버릴 것이 무엇 하나 없다.
우리 삶도 내게 있는 것 무엇 하나 도움을 주는 축복이다.
이것만 있었으면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좀 더 수월했을 덴 데보다는
내게 가지고 있는 그 무언가를 충분히 느끼고 활용해야겠다.
지금 나에게 '있음'에 집중하는 데서 다시 시작해 보자.
나와 레벨과 산에 레벨을 잘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도전을 선택하고, 자신을 넘어서는 거대함은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무모한 도전은 언제 빠질지 모르는 크레바스 위험지역을 등반하는 것과 같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혼자보다는 함께어야 한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인생의 비탈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이겨내고 버티고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다.
시련과 고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가!
자기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에 산(인생)을 도전하다 보면 두려움과 무거움이 어느 틈에 벌써 가벼움으로 바뀌는 심연을 만나게 될 것이다.
산꼭대기의 오르기 위한 과정은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행위이다.
즉, 그 여정이 아무리 별 볼일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핵심에 닿았던 것 같은,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성공에서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 그릿이다.
산(인생) 정상을 오르기 위해 목표를 정한 후 아주 작은 성과부터 이룰 수 있도록 집중하며 몸을 움직이자.
계속 반복 피드백을 하며 의식적인 연습과 과녁을 수정 보완하며 나아가자.
산을 오르다 보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 또는 활용되기 기다리는 뜻밖의 세렌디피티를 찾게 될 것이다. 인생이 비탈길에 있다고 생각할수록 멈추지 말고 버티고 모험하자.
그 과정에서 삶의 새로운 방식을 이끌어내는 산령을 만날 수도 있다.
인생은 경우에 따라서 비탈길에서 오르는 행위가 나를 향한 사랑이 시작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