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있는 물건으로 변신하거나 동화되는 고양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는 책이다.
≪고양이가 말했다 나처럼 살아보라고≫
그림과 함께 고양이가 말해주듯이 툭 던지는 말은
행복은 제일 소중한 것들은 모두 내 눈이 닿는 범위 안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는 고양이처럼
행복의 충만함을 내 손이 닿는 범위에서 발견하고 누린다면 그게 바로 무위자연이다.
고양이처럼 내 삶을 그려보고 삶의 깨달음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되,
즐거움에 얽매이지 않고 고난을 하나로 바라보면 어떨까.
관계를 의식하되 잊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을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잊는 것이
온전한 '무아'라는 사색을 하게 된다.
인생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크게 좌우된다.
항상 새로운 관점을 추구하는 고양이처럼,
자신만의 착실한 보폭으로 걸어가는 야옹이들을 바라보며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내 인생을 좀먹는 부정적인 혼잣말을 바꿀 필요가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을 쓰며 최선을 다해 즐길 의무가 있다.
아무도 모른다 해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삶들이 모두 내 품 안에 있어'
기가 막히지 않는가.
주먹을 움켜쥐고 살기보다는 주먹을 펴고 살아보자.
얼마나 대단한 인생이라고 악착같이 아등바등하며 살고 있는가.
고양이들처럼 힘을 내지 않아도 인생은 흘러간다.
시간은 붙잡는다고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물 흐르듯이 흘려보내고 힘 좀 빼고 살아야겠다는 사색을 하게 된다.
고양이들은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채워진 것이 아니라 비워 두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다른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비어 있음은 없음이 아니라 온전하게 자연과 일상과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닐까.
누워도 보고 놀기도 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하며,
즐기고 음미하며 살아가는 고양이 그림이 평안하게 바라보게 된다.
우리 인생도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용기가 난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무소유'에 삶이다.
고양이들처럼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자.
남의 한계도 정하려고 들지 말자.
마땅히 자신과 세상이 부합하길 요구하지 말자.
세상을 느껴보려고 노력하지 말자.
끊임없이 평가하고 선입견을 가지고 자신과 남을 비교하지도 말자.
'To live is to PLAY'(산다는 것은 노는 거야)
평안한 카페에 앉아 맛있는 차와 함께 고양이가 건네는 깨달음을 느껴보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