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고 싶은 상급자가 된 개념 없던 하급자' 이야기
권위는 책임지는 순서이며 권위가 높아질수록 외로워진다.
하급자는 딱 해고되지 않을 정도로만 일하고, 겨우 일을 때려치우지 않을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문제는 죽이고 싶은 상급자다.
관리자는 실무자가 아니다.
관리자는 실무자, 즉 하급자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실무자에게 변화와 발전의 이유를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청출어람이 될 수 있도록 하급자를 심심하게 만들지 않는 관리자가 끝내 사랑받는다.
이 책의 핵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의 정체를 깨닫는 것이다.
길군 저자 필력에 계속 웃음이 터진다.
끝까지 이럴 수 있을까?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된다.
멍부(멍청하고 부지런한 불사조 팀장) 역시 재앙이었다.
아들러 ≪인간이해≫에서 불사조를 "담즙질"로 분류했다는 문장에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담즙질의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자기 길을 막는 돌을 발견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돌을 집어던진다. 다혈질의 사람들이 여유 있게 그 돌을 넘어 유유히 자기 길을 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왜 이리 예시도 잘 가져다가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건지 '길군' 지금까지 합격입니다.
멍부가 상급자면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는 견디지 못하고 이직하거나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고,
멍부 밑에는 멍부들만 모여서 일을 안 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는 흐름이 공감이 간다.
그리고 멍부들만 있다 보니 멍부 상급자는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이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 고객보다 내부고객(강사)에게 신경을 쓰다.
내부에서 쓰려지는 기관은 불사조처럼 부활할 수 없다.
상급자가 하는 모든 지시가 부당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하기 싫었던 지시가 있었을 뿐.
불복종하면 피가 튀고 뼈가 꺾이기에 우리는 건강하고도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사색해야 한다.
내부고객(안내데스크 직원, 용역 직원, 공익근무요원, 강사)을 움직이게 하니 외부고객까지 움직이게 된다.
상급자의 고객은 하급자이며 하급자가 만족하면 외부고객도 만족하게 된다.
상급자 기준이 책임이라면 하급자 기준은 변화 즉 성장이다.
불사조보다 더 심각한 사람은 절대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다.
성장하는 척하고 매사 말로 때우고, 관리자가 볼 때만 일하는 척하는 이들은 곧 동료에게 자기 책임을
전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매사 불평불만하고 사전에 '감사'라는 단어가 없다. 이런 이가 승진하게 되면
재앙을 넘어 학살이 일어난다.
주변 사람에게 더욱 열정적으로 돌은 던진다는 표현이 왜 이리 와닿는지 웃음이 또 터졌다.
성장하지 않는 사람과 성장하는 척하는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는가!
'절대 성장하지 않는 사람'은 쉽다. 감사하는 자세와 태도다(불평불만)
'성장하는 척'은 어렵다. 부당하게 여길 만한 지시(고난)을 주었을 때 순종하거나 따르려는 시도나 노력이 있다면
이는 '성장하는 사람'이다. 즉 지시가 있었을 때 미묘하게 자세와 태도가 다르거나 시키는 대로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척'이다.
불사조, 식충으로 상급자를 설명하는 부분이 공감 가고 웃음을 유발한다.
지금에서야 만나서 즐겁게 해주는지 애정 하게 될 작가님을 만나 행복하다.
조직 및 결혼에서 '성장하는 사람', '성장하는 척하는 사람', '절대 성장하지 않는 사람' 구분해야 한다는 사실만
알아도 책을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거리를 둬야 하는 사람인지 조금은 가깝게 지내야 하는 사람인지
≪앵그리 보스≫를 통해 알게 되었고 사색할 수 있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제삼자를 존중하는 자세와 태도'로 구분할 수 있다.
나 또한 좋은 사람인지 알기 위해 던지는 질문(고난)도 있지만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어떻게
대하는지 태도를 보고 판단하는데 공감이 가는 문장이 나를 즐겁게 한다.
가정이 화목해야 뭐라도 되지 않겠는가
가화만사성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는데 편집장이 통째로 편집 한 부분이 궁금하다.
끝까지 웃음을 유발하는 저자 덕분에 배꼽이 빠진다.
미주, 참고도서 목록을 보고 감동과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3,000여 권의 책을 읽고, 300여 권의 책을 필사하며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 덕분에
깨달음과 웃음을 주는 두 마리 토끼를 주는 책을 만날 볼 수 있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