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왜 ≪마흔에 읽는 니체≫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보통 제2의 인생을 출발하는 나이를 마흔이라고 한다.
마흔이라면 더 이상 가면을 쓰지 않고 당당하게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예전에는 타인의 인정과 시선을 느끼고 살았지만 마흔이 되면 나를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마흔이 되면 마음속에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라고 한다.
니체 대표작 '초인', '힘에의 의지', '영원 회귀'가 말하는 사상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마흔, 지금껏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면 이제부터 질문의 대상과 방식을 바꿔야 하는데
질문의 대상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할 힘을 품고 있다.
니체는 명사형이 아니라 동사형으로 삶을 이어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배우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바로, 나를 위해서 말이다.
마흔에게 성공이란 '무엇을 달성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성장했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카르페디엠, 아모르파티처럼 니체를 자신의 운명을 사랑했다.
마흔에 읽는 니체 사상은 20대, 30대 접했을 때와는 사뭇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영원한 행복은 없지만 언제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나답게 살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부르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시간을 가져야 하고,
"모든 삶의 순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에서 <주역>이 말하는 우연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는 문장이 생각났다.
부정적인 것을 붙들고 있지 말고 삶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감사의 힘을 활용해야 한다.
니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너그럽게 사랑하고 그리고 더 깊이 감사하라고 말한다.
감사함을 누구보다 실천했던 그가 바로 '니체'이다.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할 것인가?"라는 영원회귀 사상에서도
지금 이 순간 내게 있는 삶을 최고로 긍정하는 니체가 바로 '초인'이다.
낙타(버터 내는 삶)에서 사자(자유를 쟁취, 주인의식)로 정신을 변화시키고 끝내 어린아이(몰입)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꿈꾸고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 생각의 주인으로 살았는지, 생각의 노예로 살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