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바꾸는 인문학, 변명 vs 변신 -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플라톤.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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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플라톤이 적어낸 ≪소크라테스 변명≫, 카프카 ≪변신≫이 말하는 죽음이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났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소크라테스는 말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염치가 모자라서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비위에 맞도록 바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개 있게 변명하지 않는 위인이다.

카프카는 어느 날 벌레로 영업사원에서 치즈 등 음식만 탐하게 되는 식객으로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소통 부재와 누이동생과의 일반적인 소통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각자 죽음은 다르나 죽음을 통해 무언가 깨닫게 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

인상깊은구절

아마 그것은 보통 사람이 지니고 있는 지혜일 겁니다. 실제로 내가 갖고 있는 지혜란 특별한 것 없습니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 이상의 지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나는 그런 지혜를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누가 나에게 그런 지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나를 중상하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p26~27

만일 당신이 조금이라도 사회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죽느냐 사느냐의 위험을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일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선한 사람이 할 일인가, 악한 사람이 할 일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p49

그러므로 재판관 여러분, 죽음에 대하여 희망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리고 선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p90

그레고르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어둠을 지켜보면서 부모님과 누이동생에게 이런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자신이 대견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안락, 행복, 만족의 일체가 무서운 종말로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p135

"이것이 인생이다. 나의 늘그막의 안식이란 게 요모양요꼴이란 말이야" p174

총평

소크라테스 ≪변명≫을 읽고 있노라면 슬프다. 사형이 되지 않아도 노인이었고 곧 세월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그를 30표, 80표로 끝내 사형되고 만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하고 다녔다. 메타인지하는 그의 태도를 본받고 싶어진다.

자신을 알았고, 겸손했고, 질문법을 통해 타인이 본인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달인이었지만 그 덕에 미움을 받고 살았다. 솔직하게 살아도 미움받아 죽는다면 그 죽음을 수용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멜레토스는 왜 이리 무식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무식한 사람과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벽이랑 대답하거나 답정너이다.

소크라테스는 질문법을 통해 배심원들을 흔들었지만 끝내 무식한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어처구니없는 내용으로 사형까지 가는 그는 기개가 장난이 아니었고 침착했다.

배심원들이 죽음을 결정할 수 있었겠지만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 수 있었을까!'

문득 일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사명을 가지고 있으면 무섭겠다는 생각이 났다.

직장을 다녀보니 사내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가장 무섭고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무식해도 일 1도 못해도 사내정치를 잘하면 잘 다닐 수 있는 조직을 보며 나 또한 오염될까 두렵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했고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답은 본인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변명≫을 통해 읽어볼 수 있다. 끝내 사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었지만 조금이라도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더욱 많은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레고르는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하게 된다. 끝까지 자신을 수용하지 못하고 부정하던 그는 누이동생을 통해 식객으로 변했고 누이동생의 결정을 통해 잠자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열심히 일하면서 집에 보탬이 되던 그가 한순간 변신으로 그전까지 누렸던 안락과 행복은 사라지고 말았다.

괴물 같은 목소리라도 말을 할 수 있었음에도 끝내 말하지 않고 소통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끝내 아들로서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가족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닫힌 문 너머로 가족들은 침묵했다.

끝내 희생이라고 말해야 할지, 끝내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죽고만 그는 가족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긴박하게 돌아가는 ≪변신≫은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 살아가면서도 가족과의 부재를 통해 고독과 불안함을 엿볼 수 있다. 열심히 회사에서 식사시간까지 9시간을 소비하고 온 우리는 가족과의 얼마나 많은 대화와 공감을 하고 있는지, 회사에서 돈 벌어오는 것보다 가족 안에 있는 더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많은 사색을 하게 한다.

≪변명≫과 ≪변신≫을 통한 죽음에 대한 인문학을 접해 보시기를...

책이 나에게 하는 질문

죽음을 말하는 철학과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철학은 심오하면서도 계속 읽고 이해하다 보면 그만큼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설은 내가 1인칭 주인공이 되어 벌레가 된 것처럼 느끼고 주인공의 감정을 함께 느끼면 감정이입이 된다고 해야 할까.

철학은 머리를 좀 더 쓰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재미있어지고,

소설은 흐르는 대로 읽으면서 감정 소비를 하면 더욱 재밌는 것 같다.

철학은 전체적인 인생을 다루고 있는 숲이라면,

소설은 현실적인 인생을 다루고 있는 어떤 나무인 것 같다.

죽음에서도 철학과 소설은 우상적이냐, 현실적이냐 이지 않았을까!


'스타북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읽고 작성했습니다.

평소 관심 있는 분야의 도서만 신청하여 서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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