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에는 지금처럼 화장실이 집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어서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참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저희 집에서는 삼촌이 마룻바닥을 뜯어내고 살려낸 도둑고양이를 잠깐 키웠었는데 처음에는 제가 그 고양이를 너무 무서워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엄마가 부지깽이를 들고 저리 가라고 고양이를 쫓아주셨던 기억도 나네요. 푸세식이었던 화장실에 가면 아래에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물어보는 귀신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론 한동안 화장실 갈 때마다 가슴을 졸였던 기억도 납니다. 하물며 그 무서운 화장실을 밤에 가야한다면? 더더욱 무섭겠죠? 그래서 전 밤에는 주로 요강을 썼는데 길남이와 길수 형제는 한밤중에도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니 저보다 몇 배는 더 무서웠겠어요. 하긴 저 역시 큰 볼일은 밤에도 요강 대신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해서 큰 볼일은 잠들기 전 미리미리 봤던 기억이 납니다. 동생 길남이도 저처럼 자기전 미리미리 볼일을 봤으면 좋았겠지만 잠자다 갑자기 배가 아팠으니 그건 어쩔 수 없었겠네요. 참 불편했던 시절, 그래서 마음속에 더 아련하게 자리잡은 그때 그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그림책이었어요. 처음에 밤똥이라고 해서 저는 똥 모양이 밤 모양인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밤에 누는 똥’ 을 밤똥이라 부른거였네요. 한밤중 배가 아파 잠을 깬 길남이는 형 길수를 깨워 똥 마렵다고 뒷간에 같이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형은 처음에는 길남이의 말에도 잠든 척 꿈쩍을 않더니 나중에는 엉뚱하게도 동생 길남이에게 똥구멍에 힘을 바짝 주라며 똥 참는 법을 알려주네요. 그렇지만 참아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꾸만 찔끔찔끔 나오는 똥을 길남인들 어쩌겠어요. 결국 형 길수는 밖에서 촛불을 들고 서있고 길남은 똥을 눕니다. "형아, 뭐 해?" "너 기다리지 뭐 하긴 뭐 해?" "다 눴어?" "아~니." "아직 멀었어?" "한 방울만 더 누고." "눈 온단 말이야. 대충대충 싸고 나와." <밤똥 참기 中 에서 발췌> 혹시라도 형이 먼저 가버릴까봐 무서운 순진한 동생, 투덜거리면서도 동생이 똥 다 눌 때까지 기다려주는 착한 형, 닭한테 밤똥 대신 눠달라고 형제에게 밤똥 파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재미난 엄마. 어쩜 이렇게 정겨울 수가 있을까요? ^^ 불편한 것은 그저 불편한 것일뿐 꼭 나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길남이와 길수가 한밤중 무서움에 떨며 화장실에 가보지 않았다면 두려울 때마다 함께 해주는 형제애도 배울 수 없었을테고 밤똥 파는 노래를 부르며 키득댔던 엄마와의 아련한 추억 역시 없었을테니까요. 사람은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우리 아들은 이 다음에 커서 지금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 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아들에게도 이쁘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고 싶네요.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푸세식 화장실에 관한 추억과 밤똥 팔기 풍습. 밑씻개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에 금방이라도 까르르, 우리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져나올만큼 생생한 표정의 삽화가 더해져 읽는 재미, 보는 재미가 모두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책 이미지의 저작권은 해당 출판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