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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문고판) ㅣ 네버엔딩스토리 10
김진영 지음 / 네버엔딩스토리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네버엔딩 스토리 10권 세트> 중 10번째를 장식하는 책이다. 어린왕자, 동물농장, 변신 등 워낙에 쟁쟁한 작품들과 세트로 묶여있다보니 혹 10권 세트 구색을 맞추기 위한 책은 아닐까 솔직히 처음에는 오해 아닌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열네 살 아이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과 거짓말이 무엇일지 엿보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는 작가의 말처럼 열네 살 아이들이 가질 법한 비밀과 거짓말, 아이들 마음까지 아주 참신하게 담아내고 있다. 내가 열네 살이었다면, 내가 장하리였다면 나라도 꼭 저렇게 생각하고, 꼭 그렇게 행동했을 것만 같다. 아이들 마음을 어쩜 이렇게 속속들이 잘 표현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그 표현력이 가히 예술이다.
열네 살, 장하리는 성민이라는 같은 반 남자친구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 화장실에 누가 놓고간 에픽하이의 (포장도 안뜯은) 새 CD를 몰래 숨겨나오고 그 CD를 성민이에게 선물한다. 이 일을 계기로 성민이와 하리는 사귀게 되지만 그날 화장실 옆칸에 있던 예주라는 같은 반 친구가 하리의 행동을 보게 되고 그걸 빌미로 예주는 하리를 협박해 물건을 훔칠때마다 하리를 데리고 다닌다.
엄마는 도벽이 있는 식당 보조, 아빠는 매일 술을 마시는 막노동꾼. 가난해도 가족끼리 단란하기라도 하면 좋을텐데 아빠는 하리를 밥 차리는 기계 쯤으로 생각하는 듯 하고 엄마는 죽은 동생 생각하느라 하리한테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면? 게다가 CD 사건을 성민이나 학교에 이야기할까봐 예주한테 수시로 불려다니면서 도둑질을 하거나 망을 봐줘야한다면? 유일하게 좋아하는 성민이조차도 하리가 성민이를 필요로 할 때는 달려와주지도 않는다면? 하리가 느꼈을 막막함과 답답함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낙엽만 굴러도 깔깔대며 웃을 나이지만 그 풍부한 감수성 때문에 아이들은 더 쉽게 상처받고, 한번 상처를 받으면 더 상처 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놓기도 하는 시기가 바로 열네 살이 아닌가 싶다. 한창 예민할 시기에 가정형편도, 가족도, 친구도, 공부도 뭐 하나 내 맘처럼 되는 일이 없는데 거기에 협박까지 받고 있으니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자살이나 가출 같은 나쁜 마음을 먹어볼 시기이기도 해서 하리도 혹 그런 생각을 품지 않을까? 책 읽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한테 화가 나 문을 쾅 닫고 밖에 나가도 더이상 돌아다닐 데가 없으면 알아서 집으로 들어오고, 또 화가 나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도 누구처럼 몇십년간 방에서만 지내지 않고 금세 방밖으로 나오는 하리의 모습에 얼마나 안심이 됐나 모른다.
내가 하리만 했을 때 난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으로 엄마를 상처줬을까 곰곰이 떠올려봤다. 그때 나 역시 한창 사춘기라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게 불만 투성이였다. 초등학교 때는 아이들을 우르르 몰고 다닐 정도로 활달했었는데 중학교 입학하고부터는 갑자기 내성적으로 변해서 친구 하나 사귀기도 녹록지 않았다. 엄마는 늘 집을 비우고 회사를 다니셔서 학교 끝나고 오면 내가 밥을 차려먹어야하는 것도 싫었고 늘 예민하신 아빠의 잔소리도, 언니랑 같은 방을 써야하는 것도, 정말 모든게 다 싫었었다. 그러다 엄마랑 말다툼을 하게 됐고 엄마한테 해서는 말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대체 나한테 뭘 해줬는데?" 너도 꼭 너 같은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라는 엄마 말에 1초도 생각지 않고 "엄마는 딸한테 그런 악담을 하고 싶어?"라고 되물었던 걸 보면 내가 형편없는 딸인줄 내 스스로도 알긴 알았나보다. 그때는 왜 그리 모든게 불만이었고 힘들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되지만 그때는 정말 모든게 귀찮고 뜻대로 되지 않아 불만이었다. 단순히 호르몬 분비 때문이었는지 내가 그 정도를 이겨낼 마음 그릇이 못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저 원망과 짜증만 늘어놓던 하리가 어느덧,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해서 엄마, 아빠한테 상처 준 걸 후회하고 엄마의 김칫 국물 묻은 옷을 보고, 아빠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자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할 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하리가 점점 자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네 살 사춘기는 어른이 되려면 누구나 거쳐야하는 시기지만 누구는 조금 쉽게, 누구는 조금 더 어렵게 지나간다. 하리가 친구들보다 지금 이 시기를 훨씬 더 힘들게 이겨내야한다고 해서 자기보다 나은 친구들을 부러워만 하고 자꾸 가슴 아파해 하지 않았음 좋겠다. 불에 달군 쇠를 열심히 두드릴수록 더 단단하고 좋은 연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하리처럼 혹독한 사춘기를 겪은 아이들이 이 다음에 어른이 돼서는 더 단단하고 야무진 어른이 될 수 있단 걸, 그래서 남들과 똑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하리는 충분히 이겨낼 힘과 용기가 저절로 생긴다는걸 하리 스스로 깨달아서 지금 시기를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생각했음 좋겠다.
힘든 시기는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 힘든 시기를 힘들다 투덜대지 않고 현명하게 잘 견디다보면 어느새 훌쩍 자란 하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테니 하리가 부디 힘내길 마음속으로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