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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아줌마 -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부부생활 탐구
문선희 지음 / 생각창고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모두의 기대(?)를 뒤로 하고 14년 6개월을 살았지만 14년 6개월 모두가 행복하기만 했겠습니까? 비도 오고 천둥도 치고 벼락도 쳤지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 행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은 둥글둥글하고, 한 사람은 날카롭기 짝이 없는데 어설프게 서로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동안 얼마나 많이 아프고 힘이 들었겠습니까? 날카로운 전 모난 부분이 깎이느라고 아프고, 둥글둥글한 쭝은 모난 곳에 찔리느라 아프고…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하다보니 비로소 길이 보였습니다. 모난 것은 모난 대로 둥글둥글한 것은 둥근 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고도 비로소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행복했습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 문선희님의 "오! 해피 아줌마" P178 中 에서 발췌 -
얼마전 모 드라마에서 젊은 부부는 정말 피튀기게 싸우고 있는건데 멀리서 바라보는 노부부 눈에는 그 젊은 부부가 눈싸움하는 모습이 한편의 러브스토리인 것만 같아 당신들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그 장면 바로 아래에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문구가 같이 뜨면서. 내가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친구님들은 우리 부부 사는 모습이 참 알콩달콩, 이쁘게 산다고, 아직도 신혼같다고 좋게좋게 말씀들 해주시지만 방금전에도 언급했듯,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실은 우리 부부는 알콩달콩이 아니라 투닥투닥이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부부생활을 하고 있어 친구님들 말씀을 들으면 왠지 찔리곤 한다.
작가는 올해로 결혼 15년차, 난 결혼 12년차에 접어들었다. 대학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3년간의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해서 아들 하나 낳고 지금도 작가만큼은 아니어도(굳이 수치화한다면 작가의 절반 정도쯤?) 우리 가족도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닭살행각이 있었으니 작가(썬)는 남편분, 쭝이 아직도 팔베개를 해줘야 잠이 든단다. 작가들의 고질병인 목디스크의 고통을 참아가며 쭝의 팔베개를 견디더니 이젠 쭝의 팔베개와 쭝과 썬의 크로스 자세가 아님 잠을 잘 수 없다나? 다른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작가의 절반 정도가 아니라 반의 반도 못따라가는터라 우리 부부 사이와 작가의 부부 사이를 비교하며 내심 부럽기 그지없었다. 우리 부부는 연애도 3년 이상 하고 결혼한터라 예전엔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가슴이 콩닥거렸는데 이젠 남편이 남자가 아닌 그냥 가족이란 생각밖에 안드니 말이다. 어느새 내 살이 남편살 같고 남편살이 내 살 같아 남편이 내 옆에 와도, 심지어 찰싹 달라붙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고 할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 이란 모 전자의 광고컨셉을 인용하며 작가 스스로 표현하기도 작가의 실제 제멋대로인 성격과는 달리, 신혼초부터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잘 울고 벌레 하나만 봐도 남편한테 전화 걸고 등등. 스스로 모질이 아내에 내숭녀로 거듭나기로 결심했다는 작가, 썬. 아주 대놓고 여자들의 공공의 적이 되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듯 초절정 내숭을 떨며 말하고 행동하는 썬을 곱게만 봐주기란… 같은 여자로서 조금은 힘들었다. 하지만 작가, 썬은 진짜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깜찍한 여우였다. 걸핏하면 남편의 행동을 오해하고 쭝이 애써 잡은 무드를 와장창 깨놓는거 보면 분명 여우과(科)라기보다는 나와 같은 곰과(科)인데, 타고난 눈물 연기에 남편, 쭝을 장장 15년동안 휘어잡은 거 보면 무언가 아주 삐리리한 매력을 가진 귀여운 여우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나 잘났어" 를 외쳐대는, 자기보다 잘난 여자는 못견뎌하고 오히려 자신보다는 부족한 여자들을 더 편해하고 감싸주는 남자들 심리를 간파한 듯 스스로 모질이 컨셉을 잡은 것만 봐도 그녀는 확실히 미워할 수 없는 여우임에 틀림없다. 작가 스스로도 밝혔듯 작가 역시 다른 부부처럼 왜 살면서 힘든 일이 없었겠냐만은 좋은 것만 애써 보려고 스스로 노력하며 행복한 가정을 견고히 해나가는 모습이 그녀가 썼던 프로그램들만큼이나 똑소리나게 책 곳곳에 이쁘게 그려져있다. 작가의 딸, 경서의 3번에 걸친 수술, 썬과 시어머님과의 은근한 신경전 등등 작가는 아무일 아닌척 비교적 담담하게 써내려갔지만 그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앞서 썬의 행동이 너무 여우같다며 잠깐이나마 작가를 미워했던게 못내 미안해지기도 했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에 책을 읽어야만 책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못난 습관 탓에 조금만 재미없어도 금세 꿈나라로 떠나버리곤 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어서 누워서 편히 보다 벌떡 일어나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린 책이기도 하다. 초반부터 중후반까지는 재밌어서 킥킥대느라 정신없었고 후반부에서는 딸, 경서의 아픔 때문에 작가가 느꼈을 엄마로서의 자책감과 부모님을 향한 썬의 애틋한 감정이 내게도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썬과 쭝의 알콩달콩, 재미난 러브 에피소드도 한가득, 거기에 15년동안 신혼생활을 즐기는 작가 나름의 결혼생활 노하우와 하나뿐인 딸, 경서를 똑소리나게 키워낸 육아법까지 깔끔하게 정리돼있어 재미와 정보 면에서 모두 만족스런 책이었다.
어젯밤, 퇴근길에 딸기를 사들고 온 남편한테 딸기 좀 씻어달라고 했더니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볼에 뽀뽀하게 해주면 내가 씻어주지." 그래서 못이기는 척, "먹고 살기 힘드네." 투덜며 수염 때문에 거칠어진 남편의 뽀뽀를 받아주고 맛난 딸기도 먹었다. 남편 말, "먹고 살기가 그렇게 쉬운줄 알았냐?"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손발이 오글오글해지는 닭살멘트긴 했지만 오래간만에 그 오그라듦 덕분에 신혼의 달콤함을 다시금 느껴본 것 같다. 걸핏하면 상처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세상에서 가장 무뚝뚝한 남편이긴 하지만 가끔은 어제와 같은 닭살멘트도 날려주니 그걸로 만족하고 나도 작가, 썬처럼 남편의 좋은 점, 멋진 점만 바라보려 애쓰며 살아봐야겠다. 우리 아들한테는 작가, 썬이 그랬듯 ’사랑’ 이란 교육법을 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