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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빼뚤 쓰는 법 ㅣ 동화는 내 친구 60
앤 파인 글, 윤재정 옮김 / 논장 / 2009년 7월
평점 :
착해보이는데다 나긋나긋해서 만나자마자 죽이 척척 맞아 참 잘 지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실망스런 친구도 있고,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툴툴거리는 성격이 별로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국이다 싶은 친구도 있습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저 역시 두번째 친구가 훨씬 더 좋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친구의 말투며 행동이 마음에 안들어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그 친구와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거친 돌이 파도에 휩쓸리다보면 둥근 돌이 돼가듯, 그 친구의 행동과 말투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기게 되고, 오히려 자기 감정표현이 확실해 사람 헷갈리지 않게 하는 그 솔직담백함에 종종 반하게도 됩니다. 저 역시 그런 친구가 둘 있습니다. 둘다 무뚝뚝하지만 진국인 친구들이죠. ’얘네들, 여자 맞아?’ 라고 할 정도로 무뚝뚝해서 처음에는 다가가기조차 힘들었지만 자기들의 무뚝뚝함에 종종 상처받았었던 제 맘을 위로라도 하듯, 어느새 제게 평생지기가 돼준 친구들입니다.
여기, "처음에는 무뚝뚝하고 툴툴거리는 성격이 별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이다 싶은 친구", 바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체스터 하워드죠. 엄마의 회사문제로 전학이 잦은 탓에 자칭 아웃사이더라 칭하며 어떤 학교생활에도 그럭저럭 잘 적응했던 체스터였지만, 이번에 전학 온 윌버틀 매너 초등학교는 그간 전학 다녔던 학교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테이트 선생님은 이름을 "하워드 체스터"로 바꿔부르시질 않나,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다 싫어할 칠판당번을 서로 하려고 들질 않나, 선생님과 친구들은 지나칠 정도로 친절히 굴어 몸둘 바를 모르겠고,한술 더 떠 신경회로에 문제가 있는(실은 학습 장애아) 조와 짝까지 됩니다. 테이트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나만의 비법" 에 대해 쓰는 과제를 내주는데 하워드(책에서는 체스터를 계속 하워드라 부르기에 저도 하워드라 부르겠습니다)의 짝인 조는 어이없게도 "또박또박 쓰는 법"을 과제 제목으로 삼겠다네요. 하워드가 조의 공책을 죽 봤더니. 세상에~ 조의 글씨는 정말 ’엉망진창 뒤죽박죽’ 인데 말이죠.
▲조의 엉망진창 글씨입니다. 해석이 필요할 정도죠?
<리뷰 속 인용 문구는 책 속의 글을 인용했으며,
책 사진 이미지의 저작권은 ’논장’에 있습니다.>
"조가 어떻게 그 과제를 해요??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오는게 쉽겠어요.’또박또박 쓰는 법’이오? 조의 공책을 보세요. 조는 ’쓰는 법’부터 배워야한다고요.
우리 반이 즐거운 교실인 것 치고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무척 차가웠다. "하워드 체스터, 그만 입 좀 다물어주면 고맙겠구나.조는 학교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이 좀 있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노력하고 있어.""씩씩하게라고요?" 난 코웃음을 쳤다.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란 말이 더 잘 들어맞겠죠!" -"삐뚤빼뚤 쓰는 법" P33 中 ’테이트 선생님과 하워드의 대화’ 중에서 발췌-
조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시려고 하는 테이트 선생님의 의도도 좋지만, 하워드는 조에게 이런 과제는 너무 버겁다는걸 깨닫고 조의 과제 제목을 새로 정해줍니다. 바로 "삐뚤빼뚤 쓰는 법"이죠."또박또박 쓰는 법"은 조에게 무리지만 "삐뚤빼뚤 쓰는 법"은 조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겠죠? ^^
"한 시간 뒤, 선생님은 머리털을 쥐어 뽑도록 지겨운 내용을 또다시 설명했다. 이미 열 번씩이나 이야기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한 머저리들 때문이다." - "삐뚤빼뚤 쓰는 법" P26 中 에서 -
반 아이들이 수업을 잘 따라오든 못 따라오든, 아이들이 수업내용을 알아들었든 못알아들었든, 오직 진도 나가는데만 충실한 선생님들도 꽤 계시는데 테이트 선생님은 잘 못 알아듣는 몇몇 아이들을 위해 열 번 넘게 같은 설명을 해주신다는 글이 참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습니다. 반아이들을 등수와 상관없이 모두 끌어안고 같이 가려는 테이트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가 느껴지는 문장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의 이런 배려에 보답이라도 하듯, 테이트 선생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졸업후에도 재학중에도 테이트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참 따듯하고 바르게 자라주고 있음이 이 책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나중에는 그토록 냉소적이었던 하워드마저 그 사랑을 느낄 정도니까요.
이 책에서 하워드는 매사에 불만 많고 툴툴대기 좋아하는, 꽤나 냉소적인 아이로 나옵니다. 그러나 짝꿍인 조한테 이제부터는 신경을 끊겠다고 하면서도 조가 수업을 제대로 못따라가고 과제를 못해내자 자기 과제를 미뤄놓고 조를 도와줄 정도로 속정만은 누구보다 깊은 아이로 나오죠. 어지러진 조의 책상 속도 말끔히 정리해주고 조의 놀라운 재능을 두루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조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나름의 최선을 다해줍니다.
전 하워드를 보는 내내 자꾸만 "콩닥콩닥 ○ 바꾸는 날"의 승연이가 떠올랐습니다. 승연이 역시 하워드처럼 짝꿍인 창훈이를 답답해하고 맘에 안들어하면서도 짝꿍이 힘들어할 때마다 도와주거든요. 창훈이 탓에 좋아하는 우진이와 짝이 못됐다고 처음에는 창훈이에게 못되게 굴던 승연이였지만, 3일후 창훈이가 전학 간단 선생님 말씀을 듣고나선 창훈이의 수학 공부도 도와주고 준비물도 넉넉히 챙겨와 창훈이의 가족신문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어쩜 하워드와 그리도 닮아있는지요. 두 친구의 사는 곳도 상황도 다 다르지만 속정만은 깊은 승연이를 지켜봤을 때처럼 하워드를 지켜보는 내내 그 기특한 마음 씀씀이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곤 했네요.
전 테이트 선생님이 조에게 그랬듯, 열심히 가르쳐주는데도 우리 아들이 계속 못알아들어도 언제까지나 끝까지 화내지 않고 가르쳐줄 자신은 없습니다. 전 하워드가 조에게 그랬듯, 우리 아이가 잘하는게 한 가지도 없는데도 그걸 눈감아주고 네가 잘하는 일만 열심히 하라고 말해줄만큼 열린 생각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테이트 선생님처럼 우리 아들에게 화내지 않고 끝까지 친절할 수 있도록, 조처럼 우리 아들의 장점만을 발견할 수 있는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합니다. 전 우리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바로, 엄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