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년 전, 7살된 아들이 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다.방금전에 아들과 함께 아들친구집에서 신나게 놀고 친구엄마들이랑 같이 다 나왔는데 아들이 어디로 사라진건지 순식간에 없어졌었다.그 순간부터 아들을 다시 찾기까지 난 살아있어도 살아있는게 아니었다.겨우 30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나한테는 30시간, 아니 한달처럼 길고 길게 느껴졌다.다른 사람이나 물체는 하나도 눈에 안들어오고 오직 아들을 찾으려고 아파트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전화를 몇번씩이나 돌려봤다.모래 놀이터에서 엄마가 자기가 없어져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는 전혀 몰랐다는듯 너무나 잘 놀고 있는 아이를 보니까 어찌나 반갑고 다행스럽던지...하지만 그 반가움과 안도감이 순식간에 화로 바뀌어서 아들을 정말 무섭게 다그친 적이 있다.비단 나뿐만 아니라 자식을 잠깐이라도 잃어버려봤던 부모심정은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이가 며칠없어졌는데도 찾을 노력조차 안한채 그 아이한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상한 가족이 있다. 걱정은 어떤 가족들 못지 않게 많이 하지만 자신들이 간직한 저마다의 비밀 때문에 경찰에게 선뜻 알리지도 못하고 아이를 찾기 위한 전단지도 돌리지 못한채 전전긍긍하는 가족이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느라 자기 자식의 안위 따위 모른척하는,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애써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될거라 스스로 안위하는 몰인정한 아버지,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나약한 어머니도 있다.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드러내놓고 찾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 것 외에도 이 가족은 결코 평범한 가족은 아니다.아버지의 불법적인 사업 덕에 생활은 아주 여유롭지만 아버지 김상호는 자기 자신만 아는 독불장군에 엄마 진옥영은 화교 출신의 새 엄마인데 잊지 못하는 정인을 만나러 수시로 타이베이로 출국해 거기서 머물다 온다.아버지와 아버지의 전처인 엄마 사이에서 낳은 남매가 누나 김은성, 동생 김혜성, 아버지와 새 엄마 사이에서 낳은 딸이 유지.누나 은성이는 이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이 혼자 살고 부모의 이혼에 상처받은 탓인지 뭇남자들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기를 원하고 그에게 집착한다.동생 혜성이는 그냥 보기에는 딱 모범생 스타일인 명문대 재학중인 의대생이지만 부모 몰래 수업을 안들은지 벌써 오래고 이것 말고도 또 한가지 커다란 문제가 있다.유지는 바이올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초등학생인데 그 나이 또래답지 않게 조숙하고 말수가 적더니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같이 살고는 있다지만 이들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아들이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지, 딸이 어떤 문제로 날마다 괴로워하는지,아버지(남편)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가족이라면 정말 속속들이 알아도 모자랄 판에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알지 못하니 이정도면 말그대로 말만 가족인 셈이다.자식은 부모가 당연히 자기들을 건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부모는 자식들 먹여주고 입혀주고 공부시켜줌 그게 부모의 할 도리를 다 한 것인양 굴고.몸은 같이 있지만 마음은 저마다 딴생각하느라 바빠서 껍데기들만 모여있는 가족.

건강도 잃어봐야 소중한 걸 알듯이 가족도 잃어봐야 소중한걸 아는듯하다. 김상호 가족 역시 다르지 않다. 유지를 잃기 전에는 서로 나몰라라하며 각자 자기 살기도 바빠 허덕이며 살다 오히려 유지를 잃고 나자 유지를 찾기 위해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나 역시 편찮으신 엄마가 내게만 의지하려 하시는게 버거워 엄마를 나몰라라 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엄마가 한평생 사실거라 착각이라도 한것인지 엄마한테 왜 그리 살갑게 못해드렸는지 지금 와서는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김상호 가족이 유지를 한번 잃어보고나서야 비로소 가족다운 가족이 됐듯 우리 가족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 돌볼 때 아옹다옹 싸우기 바빴던 언니와 나도 화해를 했다.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는다. 그것이 전부다."
- 정이현 ’작가의 말’ 중에서 -

진심을 다했다는 그녀의 말이 내 마음에도 와닿을만큼 정말 괜찮았다.재혼가정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감정싸움과 위기가 닥쳤을때야 더 잘 뭉치게 되는 가족애 등을 아주 담백하고 간결한 문체로 깔끔하게 그려내서 그녀의 전작도 후작도 기대하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