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미 - 렉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소피 킨셀라 지음, 이지수 옮김 / 황금부엉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가끔 너무 힘든 일을 겪게 되면 
내가 자고 일어나면 한 2,3년쯤 훌쩍 지나가 있었음 싶을 때가 있다.
내겐 지난 해가 그랬다.
아들은 신종플루에 걸렸었고 
엄마는 내내 병으로 고생하시다 한달간 의식도 없이 누워계시더니 5월에 돌아가셨다. 
친언니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힘든 일을 겪어서 
내가 무엇 하나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어찌나 안타까웠나 모른다.

깨어나보니 3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내가 상상만 했었던 그런 근사한 일이 주인공 렉시에게는 실제로 일어났다.
그것도 그냥 시간만 훌쩍 지나간게 아니라 
렉시의 정말 별볼일 없었던 모든 조건들이 깨어나보니 
180도로, 아주 근사하게 바뀌었다.

뻐드렁니에 뻐드렁머리(머리카락에 힘이 하나도 없고 꼬불꼬불하기까지 하다),
오늘밤은 별볼일 없는 애인인 찌질이 데이브한테 바람을 맞은데다
친구들은 모두 보너스를 받았는데 렉시만은 보너스를 한푼도 받지 못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근무 일수 1년을 채워야하는 조건에서 
딱 일주일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일은 아버지 장례식날, 택시를 잡으려다 렉시는 비에 젖은 계단에서
발이 미끄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직통으로 부딪쳤다.
...... 깨어나보니 병원 개인 특실.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머리를 다쳐서 입원한줄 알았는데 
교통사고를 당해서 5일간 의식이 없다 깨어난거라고 한다.
게다가 계단에서 넘어질 때는 2004년이었는데 지금은 2007년.
3년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더더욱 기가 막힌건 완벽해진 외모, 날씬해진 몸매, 거기에 부장으로 승진까지 돼있고
부동산 재벌인 근사한 외모의 남편까지 있다고 한다. 거기에 불륜의 애인까지......
그렇지만 렉시의 상황이 모두 좋아지기만 한건 아니다.
남편은 모든 면에서 근사하지만 렉시를 진짜 사랑하는지도 모르겠고 왠지 정(情)도 안간다. 
귀여웠던 동생은 지금은 틈만 나면 사고를 치는 아이로 변한데다
그렇게 친했던 직장 친구들한테서는 "죽일 상사년" 소리를 들으며 왕따까지 당한다.
기억도 없는데 불륜의 애인은 자꾸만 껄떡대고......

초라한 외모, 찌질이 애인한테 바람까지 맞고 직장서도 아직 인정받지 못했던 그녀가
근사한 외모, 날씬해진 몸매, 거기에 근사한 남편에 애인까지 있는데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근사한 저택서 살게 됐으니 저 정도로 조건이 좋아진다면 
’나라도 기억을 3년 정도 기억을 잃어버려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초반에는 렉시가 부러웠다. 하지만  얻는 만큼 잃는 것도 있다고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데 못되게 굴었던 과거의 내 행동들 탓에 
친구들한테는 왕따를 당하고
자길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이랑 그것도 불편하게 남편 눈치를 보며 한 공간서 살아야한다면
얼마나 고역일까 싶어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안쓰러워졌다.
게다가 죽일 상사년 소리까지 들어가며 힘들게 부장 자리에 올랐는데
잃어버린 기억 탓에 회사에서의 내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면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내가 렉시였다면
’기억도 안나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하나?’ 원망만 잔뜩 늘어놓았을텐데 
렉시는 기억은 안나지만 3년간 자기가 저질렀던 모든 일들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또 그렇게 바로잡는데 성공한다.

"기억이 떠오른 거다. 기억이 난다." P 497 中에서-
렉시가 금세 기억을 찾겠지 싶었는데 
500페이지 분량에서 그녀가 기억을 조금이라도 찾은건 497페이지에서였다.
그것도 기억을 다 찾은 것도 아니고 어떤 노래와 어떤 사람의 이미지 정도뿐.
이 점이 읽는 내내 참 답답했다.
줄거리에 있어 렉시가 기억을 찾고 못찾고가 그리 중요한건 아니긴 했지만
렉시가 금세 기억을 찾겠거니 내가 내심 기대를 했었던건지
거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와서야 그것도 기억을 완전히도 아니고 조금 찾았단게
읽는 내내 참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기억을 빨리 못찾으면
혹시라도 주변사람들에게 안좋은 쪽으로 이용당하고 휘둘리게 될까봐
내가 렉시보다 더 노심초사하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통통 튀는 대사, 특히 렉시의 기억에서 지워진 일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때
렉시 혼자 하는 생각들이 참 재밌었다. 
예를 들어 '몽블랑' 이란 단어가 기억났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 탓에
홀딱 벗고 준비하고 있는 남편을 본 순간 렉시가 얼마나 뜨악했을지
상상해보면 웃다가 뒤로 넘어갈 것만 같다.
출판사 서평처럼 시즌 10까지 나왔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재미난 미드를 보는 듯도 했고
잘 만들어진 헐리우드 로맨틱 무비를 보는 것도 같았다.
’이 문장이 무슨 의미일까?’ 곱씹어봐야만 하는 어려운 현대소설도 
눈물이 나올만큼 감동적이지도, 그렇다고  맘 속에 깊이 남을 교훈도 없지만
그러면 좀 어떠랴?
’유정천 가족’ 에서 너구리 가족이 추구했던 '사랑과 재미' 만큼은 정말 넘칠만큼 많았다.
아무 생각없이 부담 없이 보아도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가는 그런 재미난 책을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당장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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