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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책과 노니는 집』은 위와 같은 역사적 안목과 함께
어린이문학으로서의 미덕을 가지고 있다. 짧은 단문의 깔끔한 문장도 그렇거니와
특히 장이라는 어린아이의 시각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있는 점이 그렇다.
대개 문제적인 역사 시기를 다룰 때 작가는 그 시대 문제를 더 전면으로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끊임없이 시달리기 마련이고 일정 정도는 그 유혹에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그러한 유혹에서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벗어나 있다.
장이라는 어린아이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확하게 그 시대 삶을 그리고 있다.
상당한 문학적 훈련의 결과가 여겨졌다. " - P191 김진경님의 심사평 中 에서 -
사실 처음 책 표지만 봤을때는 왠지 고리타분한 옛이야기일 것만 같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그런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란 화려한 이력에 눈이 한번 갔고
다른 분들은 어찌 평가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찾아봤더니 평점 9.8점.
서평마다 꽉 채워진 별 다섯개에 자꾸만 끌리게 됐다.
그러던 차에 친한 동생이 선물해줘서 어찌나 기쁘던지~
그 덕에 아들보다 내가 먼저 신이 나 읽은 책인데
새벽에 책을 읽는 못된 습관 탓에
누워서 책을 보다 재미없으면 금세 잠들어버리곤 하는 내가
너무 재밌어서 벌떡 일어나 밤을 새워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기도 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의 두세배 정도 재밌었고 또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장이가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리는 장면에선
행여 장이가 곤경에 처할까 나도 같이 애가 타서
"빨리 빨리" 를 맘속으로 외쳐대느라 진땀이 다 날 정도였다.
"...이야기 한 편을 쓰자면 앉았다 일어서기를 백만 번쯤 하기 때문에
다리에 알통이 생길 지경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용을 쓰고 있습니다."
- 글쓴이 이영서님의 소개글 中에서 -
작가의 말대로 정말 백만 번쯤은 고민하고 용을 쓴 흔적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넣지 않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뒷맛에 여운이 남아 자꾸만 또 먹고 싶게 만드는
할머니표 된장찌개 맛이라고 표현하면 적당할까?
작가의 글을 이런 정도로밖에 표현 못하는 내가 죄송스러울 지경이다.
천주학책을 필사하다 천주학쟁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는 바람에
장독이 올라 시름시름 앓던 끝에
장이의 아버지는 관아에서 풀려난지 한 달만에 죽음을 맞는다.
장이 아버지에게 필사를 시켰던 책방 주인 최 서쾌가 장이를 거둬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여줘 장이는 책배달 심부름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장이는 홍 교리 어른댁에 '동국통감' 과 자주색 비단 주머니를
배달해드리라는 심부름을 하게 됐는데 장이 품삯보다 귀한 물건이란 최 서쾌의 말에
호기심이 동해 비단 주머니를 끌러봤다 한양 바닥에서 소문난 왈패인 허궁제비한테
비단 주머니에 들어있던 상아찌를 빼앗기고 상아찌를 다시 찾으려면 닷 전을
가져오라는 협박을 당하게 된다. 최 서쾌에게 일렀다간 죽여버리겠다는
허궁제비의 협박이 무서워 일러바칠 수도 없는 노릇.
홍 교리에겐 상아찌를 도리원에 두고 왔단 거짓말로 간신히 넘어갔지만
닷 전을 마련하기 위해 정말 피눈물나도록 고생도 하고 애를 졸이게 된다. ...
장이가 홍 교리에게 전해줬던 책은 천주학 책.
장이와 주변사람들은 이 책으로 인해 나중에 또 한번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책은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 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모아서 서가에 꽂아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놓으면 당장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 - P78 '최 교리' 의 말 中에서 -
『책과 노니는 집』, 이 책이 특히 좋았던건
천주교 탄압이란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고 천애고아가 된 불쌍한 아이, 장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가 너무 무겁거나 칙칙하지 않은데다
장이의 신세가 처량맞다거나 불쌍하단 생각보다는
위의 최 교리의 말처럼 책에 대한 사랑이라던가
장이를 물심양면으로 돌봐주는 주변 사람들의 따듯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잃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하루하루 매섭게 잔소리만 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던 최 서쾌가
실은 누구보다 자기를 아끼고 사랑했단 걸 장이가 알게 됐을 때도,
하찮은 책방사환아이인 자기를 무시하지 않고 따듯이 대해주는 홍 교리와 미적 아씨에게서
장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을 느끼는 장면에서도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물씬 풍겨나와 참 좋았다.
작가의 어린 시절, 장이만큼은 아니어도 작가 역시 어려운 생활을 해봤고
그때 주변분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아봤기에
이런 정감 넘치는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런 생각도 해보았다.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너나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힘겨운 일들을 겪지만
서로를 위해주고 감싸주면서 그 위기를 참 잘 이겨냈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배어나오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