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내 옆에 있는 아이가 진짜 내 아이일까? 
혹시 숲 속 파에리(fairy)들이 바꿔치기한 아이는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틈틈이 우리 아들을 흘끔거리게 됐다.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도 
혹시 우리 아들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우울해졌다거나 갑자기 밝아지진 않았는지 곰곰이 떠올려보기도 했다.
(파에리들의 말에 따르면 
영아는 바꿔치기 더없이 좋지만 아이를 데려와 키우는게 쉽지 않고
학교에 입학하면 상황이 복잡해지고 방대한 정보를 암기하고 처리해야하기 때문에
예닐곱 살이 바꿔치기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라고 한다
따라서 입학전 수상한 점이 없었다면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가 내 진짜 아이라 믿어도 좋겠지~ )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아 휴~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기발한 상상력 - 기괴한 분위기, 우울한 생활의 연속 - 
작가가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한 결말까지.
이 한 권의 책 속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상상력이 정말 뛰어나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게 만들기고 했고
우리 아들이 혹 파에리들이 계획적으로 바꿔친 아이이고
내 진짜 아들은 
숲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하게도 만들었다.
또 애니 데이와 헨리 데이의 생활이 둘다 너무 암담해서 나까지 우울해지기도 헀다. 
결말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해피엔딩이어서 책장을 덮으면서도 흐뭇헀다.
시작은 멋졌지만 일을 너무 크게 벌였다가 
뒷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소설도 종종 봐왔는데
이 책은 시작보다 결말이 더 멋지다고 말한다해도 무리가 없다.

책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숲속에 사는 도깨비들(파에리)이 인간세상에 사는 행복하지 않은 아이를 물색한다.
파에리들이 서로 분담해서 그 아이의 정보를 최대한 캐낸뒤 
아이를 납치해서 바꿔치기하고 
파에리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아이로 살고, 인간아이는 숲속에서 파에리로 산다.
파에리는 뼈를 녹이고 늘려 인간아이와 똑같은 생김새를 가질 수도 있고
목소리도 바꿀 수 있으니 아이의 부모만 완벽히 속일 수 있다면 
인간세상에서 행복하게 인간의 삶을 살 수가 있다.

반면 파에리들에게 납치당해 숲속에서 살게 된 인간의 아이는
거미줄로 꽁꽁 묶인채 일단 물속에 던져진다.
조금 뒤 건져낸 아이는 이제 숲속에서 파에리들과 함께 살게 되는데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려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 족히 100년은 기다리며
자기보다 앞서 납치된 파에리들이 다시 인간의 아이가 되길 고대하면서
순서를 기다려야한다..

인간 세상에 간 파에리는 안락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지만 
대신 육신이 늙고 병들고, 파에리란걸 들키지 않기 위해 늘 불안한 삶을 살아야하며
숲속에서 파에리로 살게 된 원래 인간 아이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지만
다른 인간 아이와 바꿔치기 하기전엔 아이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야한다.
게다가 예전엔 숲속 생활이 그럭저럭 지낼만했지만
숲속이 점점 인간에 의해 개발돼 시끄럽고 더러운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어
숲속 생활이 더이상 안전하지도, 아늑하지도 않다.

이 책은 납치당해 숲 속 파에리로 살게 된 원래는 인간아이였던 애니 데이와
파에리였다가 이젠 인간 아이로 살게 된 헨리 데이, 
이렇게 두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고 있다. 
애니 데이와 헨리 데이는 서로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묘하게 서로 닮아있다. 
애니 데이는 스펙이라는 여자아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스펙이 데려가준 도서관에서 독서의 재미에 푹 빠져 
자기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게 되고
헨리 데이는 테스란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테스의 독려로 교향곡을 완성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그 여자 덕분에 꿈에 도전하고 새로운 희망에 눈뜨게 되고
자기의 본래모습을 알기 위해 과거를 더듬으며 애쓰고 괴로워하는 모습은
애니 데이와 헨리 데이가 너무도 닮아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침울하지만 
판타지 소설인만큼 기발한 상상력이 곳곳에 숨어있다.
키가 왜 자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는 아버지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가짜 헨리 데이가 밤마다 몸을 조금씩 늘여 성장한다든지, 
진짜 헨리 데이(숲속에 간 애니 데이)가 파에리가 된뒤로
세상이 휙휙 지나갈 정도로 빠르게 달릴 수 있으며
몸을 늘였다 줄였다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건 물론이고 
차에 치여 쓰러진 사슴 주둥이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까지 갖추게 된다는 건 정말이지 신비롭고 흥미진진했다. 

인간 세상에 사는 파에리는 늘 이 행복함을 빼앗길까 불안해하고
숲속에 사는 파에리들은 인간 세상의 불행한 아이를 찾아 
인간아이와 바꿔치기해 지옥같은  숲속에서 벗어나려 하고.....

숲속이든 인간세상이든 늘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과거를 더듬고 현재에 만족 못하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참 닮아있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판타지지만 초현실적세계라기보다는 너무도 인간다운 이야기가 가득했고
인간적 고뇌도 가득한 이야기였다.
마지막이 행복하지 않았다면 책장을 덮으면서 한동안 우울했을 것 같다.
요즘 들어 계속 기분이 안좋았던게 돌이켜보니 이 책 탓인 듯도 싶다.
내가 애니 데이라면, 내가 헨리 데이라면 어땠을까 고민하느라
책 읽는 내내 나도 같이 우울했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최고의 결말에 같이 기뻐했으니 말이다.

정말 멋진 판타지성장소설을 만나 기쁘다.
지금 당장 또 한번 읽기엔 또 우울해질까 겁이 나지만
시간이 지나 이 책의 진정한 의미를 한장 한장 음미해보며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싶다.
허황된 판타지가 아니라 인간적인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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