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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6
앙드레 지드 지음, 이충훈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7월
평점 :
책욕심이 유난히 많으셨던 엄마 덕분에 난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위인전집, 세계명작동화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과학학습만화전집까지 항상 책장 가득 꽂혀있었다.
그 많은 책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권 한권 정복해가는 기분으로 읽는 것도
내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유독 내가 한권도 건드리지 않은 책이 있었다.
바로 좁은 문을 비롯한 외국고전문학전집이었다.
글밥은 왜 그리 많고 왜 그리 두꺼운지, 고풍스런 갈색을 띤 양장본을 볼때마다
왠지 어렵고 지루할 것 같단 편견에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서
한페이지는 커녕 몇줄 읽어내려가기도 싫을 정도였다.
그러다 이번에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6권 좁은 문을 읽게 됐다.
청소년을 위해 기획된만큼 나같이 고전을 처음 접하는 어른들에게도
딱 맞는 시리즈란 생각이 들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고전이라 해도 독자가 읽고 소화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나치게 방대한 분량과 길고 어려운 문장은
책을 읽으려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의지를 꺾을 뿐 아니라
좌절감마저 불러일으킨다." [ 책 앞머리-기획위원의 말 中에서]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원문을 그대로 읽는게 가장 좋겠지만
안그래도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써야하는 청소년들에게 징검다리 클래식은
고전을 보다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과 드라마에 길들여진 나에게
좁은 문은 사실 밋밋하게 느껴졌다.
고전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초반부엔 책장이 술술 잘도 넘어가서
고전을 이제 와서야 읽기 시작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지만
후반부 알리사의 일기와 편지로 대신한 책내용이 왜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던지~
가속도가 붙어 한창 책장이 잘 넘어가다가 알리사의 일기 부분에서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조금은 힘겹게 읽어내려갔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알리사의 일기와 편지를 보면서 왜 그리 답답하던지~
제롬을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면서도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알리사가
너무 답답해서 나도 이정도로 답답한데 제롬은 오죽했을까 싶을 정도였다.
자기자신을 위해 사랑의 결실을 맺기보다는
여동생인 쥘리에트의 행복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개인의 행복보다는 주를 사랑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평생을 살고 싶어한
알리사의 뜻은 높이 사지만
자기의 행복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만 드는 알리사를
마지막 장을 넘길때까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먼저 자기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 는 내 생각과 달라서
시종일관 답답하고 안쓰러웠다.
형제자매가 조금만 많아도 아롱이다롱이, 성격도 외모도 제각각이듯
사랑을 풀어나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를테니
내 주관적인 생각에 빗대어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제롬의 사랑을 계속 거부만 하는 알리사도,
시시때때로 변하고 갈등하는 알리사의 마음 하나 휘어잡지 못한 남자답지 못한 제롬도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서인지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이 작품을 깊이있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좁은 문 제대로 읽기" 는 정말 유익한 코너였다.
책과는 달리 알리사의 실제 모델인 아내와 사랑의 결실을 맺은 앙드레 지드의 이야기와
흑백과 컬러사진, 그림 등을 가득 실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도 참 마음에 들었다.
이제 고전 한권 읽고서 고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앞으로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을 계속 읽어볼 생각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초등학교 5학년 여자조카한테 선물해주고픈 마음이 생겼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아직 완벽히 소화해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워낙에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 1년 정도만 있으면
무리없이 고전을 받아들이고 고전의 진정한 재미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글밥 많은 책을 좋아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나같이 고전을 지루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많이 접해보지 못한 어른들에게도
적극 추천해주고픈 정말 멋진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