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레시피 - 레벨 3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이미애 지음, 문구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랑 분명 같은 재료, 같은 양념으로 끓였는데도
외할머니의 된장찌개는 신기하게도 훨씬 더 맛나고 구수해서
밥 안먹어 늘 엄마속을 까맣게 태우던 나조차도
할머니 된장찌개 하나만 있음 밥 다섯 공기를 뚝딱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만두국도 할머니 손만 닿으면 더 맛났고
명절이면 지겹도록 먹었던 토란국도 할머니가 간만 보셨다 하면
기가 막히도록 맛있어져서 밥을 몇그릇씩이나 비웠었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해마다 명절이면 외삼촌 집에 가 
그 재료와 양념 그대로 끓인 만두국과 토란국을 맛보지만
도무지 그 맛이 나질 않는다.

할머니의 레시피는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할머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할머니의 기가 막힌 손맛, 
손녀와 딸에 대한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
어제 새벽, 끝까지 이 책을 놓지 못하고 재미나게 읽다
돌아가신 엄마, 할머니 생각에 목놓아 펑펑 울었다.

서현이 외할머님의 구수한 손맛처럼
작가 이미애 님은 어찌나 글을 맛깔나고 정감 어리게 쓰셨는지
입에 착착 감겨 자꾸만 당기는 맛난 음식처럼
책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여름방학을 보내보란 엄마의 말에
서현이는 너무 싫었지만 이쁜 인형과 방학숙제 면제해주겠단 엄마의 제안에 혹해
기차를 타고 외갓집에 혼자 내려온다.
하지만 서현이 외할머니는 다른 여느 시골 외갓집의 푸근한 할머니와는
벌써 생김새부터가 다르시다.
둥글둥글 통통하고 푸근한 인상에 손자손녀 말이라면 
무조건 오냐오냐해주는 할머니들과도 거리가 멀다.  
뻣뻣한 장승처럼 키가 크고 마른데다 손녀라고 해서 오냐오냐 해주는 법도 없고 
먼저 도착한 서현이를 늦게 데리러 와놓고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는커녕
서현이 엄마는 왜 안왔냐고 화부터 벌컥벌컥 낸다.
심심한건 둘째치고라도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푸세식 변소에선 큰 볼일 보기가
죽기보다 싫다. 할머니와 단둘이 지내는 댓가로 받은 인형조차도
할머니 눈엔 곱게 안보이시는지 저주 걸고 해코지하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인형 같다고
얼굴은 운동장만하다고 생트집을 잡으신다. 
양념통닭 좋아하는 서현이에게 찜닭을 내놓고
서현이가 싫어하는 추어탕도 억지로 먹으라고 하신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할머니의 음식은 모두 정말 맛있다. 
비록 똥통에 다리 한쪽이 빠지는 구역질나는 경험도 하게 되지만
서현이와 할머니는 그렇게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가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현이가 아끼는 인형을 보고 저주할때 쓰는 인형처럼 무섭다고
그렇게 싫어하시던 할머니가
처음에는 운동장만 하다고 하셨던 인형 얼굴이 다음에는 늙은 호박만 하다고 하시고
그 다음에는 대접 그다음에는 호떡만한 얼굴이라고 
호떡 각시라 별명까지 불러주고 제법 귀여운 맛이 있다고 하시는걸 보니 
명절 때조차 코빼기도 안보여 서현이 엄마,아빠, 서현이에게 
섭섭하고 노여웠던 할머니 마음이 
서현이와 지내면서 점점 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식들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일 욕심에 새벽부터 일어나 밤 늦도록 농사일하시고 
자식 생각, 손자손녀 볼 날만 손꼽아 기다리시는 할머님, 할아버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대목이었다.

전도 젓가락으로 찢어 먹음 맛없다고 뜨거운줄 모르고 손으로 쪽쪽 찢어
손녀한테 먹이실만큼 푸근한 할머니의 레시피는 그림까지 첨부돼있어 
나중에 요리할때 실제로 써먹어봐도 좋겠다.
간장 1큰술, 마늘 1/2큰술 등등 구체적인 레시피는 아니지만
손녀 서현이를 위해 경상도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로 정성스레 써내려간 
할머님의 레시피는 맛깔스러운 할머님의 손맛과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은 그 어떤 요리책보다 더 멋지고 훌륭해서
레시피를 읽으면서 펑펑 울어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영화 "집*로" 를 떠올리게 하는 책,
할머니와 손녀의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아주 담백하게 그려내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
추석이 다가오는 요즘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골 외갓집 따스한 할머니 품으로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