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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기사 세바스티안 ㅣ 카니발 문고 1
호세 루이스 올라이솔라 지음, 성초림 옮김, 이영옥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영원한 전설로 남게 된 기사 엘시드, 그를 따르는 충성스런 기사들.
비천한 첩자 할아버지와 손자, 사악한 마법을 쓰는 아름다운 공작 부인,
살육을 즐기는 무자비한 공작, 사람들의 미래를 읽을 줄 아는 노파,
병자를 고치는 기적 같은 힘을 가진 비천한 여자까지
이 책에 등장한 인물 모두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아주 충분하다.
자기 눈을 쳐다보기만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고
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사악한 마법을 쓰는 콜룸바 공작 부인과
싸움만 즐기는 한심하고 무자비한 라카르 공작은 악인의 전형을 보여줘서
그 잔인함에 치를 떨게 만들지만 극적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말 1필 갖고픈 욕심에 그 영특함을 나쁜 곳에 쓰고도
죄책감조차 못느끼는 세바스티안이 초반에는 한심하고 얄밉게도 느껴졌지만
사악한 마법을 쓰는 콜룸바 공작 부인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제 막 옳은 길로 들어서려는 세바스티안을
다시 위험에 빠뜨리고 마음대로 조종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또 세바스티안이 나중에 섬기게 되는 엘시드의 용맹스러움와 지혜에는
나 역시 세바스티안처럼 반할 수밖에 없었다.
기사란 칭호에 맞게 싸움 잘하고 용맹스러운거야 당연하겠지만
크리스티나 공주를 구해내기 위한 엘시드의 놀라운 지략에는
나도 모르게 박수까지 치게 됐다.
왕에게 추방당했음에도 어디에서나 추앙받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존경스런 마음이 저절로 들었다.
중요한 정보를 팔아 그저 자기 소유의 말 1필이 갖고 싶었던 세바스티안은
정보를 파는 비천한 첩자들만 모여사는 마을 '나시아도스' 에서
전직 첩자였던 애꾸눈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열네살 소년이다.
첩자 노릇을 하다 왼쪽눈을 잃은 할아버지는 손자 세바스티안이
할아버지의 농장과 집, 돼지들을 물려받아 평범하게 살아주길 원하지만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보다.
돼지들에게 풀을 뜯기던 세바스티안은
고귀한 귀족 가문의 처녀로 보이는 여자와 그녀를 보좌하는 청년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이 도망치고 있는 거라 확신한 세바스티안은 그 길로
라카르 공작과 그의 누이인 콜룸바 공작부인을 만나
달아난 여자와 청년에 관한 행방을 고해바친다.
세바스티안의 안내로 달아나던 여자와 청년은 곧 잡히고
공작부인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세바스티안은
말을 타게 해주겠단 약속에 혹해 기꺼이 공작부인과 공작을 섬기기로 한다.
공작남매의 아버지는 딸의 남편이 훗날 아들의 앞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것을 염려해
딸의 결혼을 금지시켰고
라카르 공작은 오직 싸움을 위해 사는 무자비한 사람이고
콜룸바 공작 부인은 그런 남동생을 위대한 영주로 만들겠단 일념에 사로잡힌
사악한 여자이며
달아났던 여자는 실은 공작과 공작부인의 조카가 아니라
산초 왕의 조카딸인 크리스티나 공주로
공작 부인의 욕심 때문에 공작의 성에 감금돼 있단 사실을 다 알게 되지만
말을 갖고픈 욕심과 공작 부인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세바스티안은
공작과 공작 부인의 일에 점점 더 깊이 연루돼
후엔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까지 저지르게 된다.
콜룸바 공작부인의 남동생을 향한 비뚤어진 사랑은
분명 잘못됐지만 안쓰러움을 자아냈고
비천한 첩자지만 약속은 꼭 지키려는 지혜로운 세바스티안의 할아버지에게서는
손자를 아끼는 따스한 마음과
죽기전 한번이라도 옳은 일을 하고픈 노인의 절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영토를 보호해주는 왕에게 조공을 바치고
조공을 바치지 않으면 힘으로 제압해 본때를 보여주고,
무기만 현대화되고 무대만 11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왔을뿐
약자가 강자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단건 씁쓸했지만
충성을 다바쳐 모신 왕에게 추방당했음에도 그 왕에게 평생동안 충성을 다하고
약자에게 너그럽고 강자에겐 더 강하게 맞서며
가족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용사 엘시드를 만나게 된건 참 흐뭇했다.
첩자의 신분으로 용맹한 기사가 되고픈 꿈을 키워가는 세바스티안의
흥미진진한 모험이야기를 주로 다뤘지만
개인적으론 용사 엘시드가 가장 매력있었고
엘시드 같은 리더십과 포용력,지혜를 두루 갖춘 위대한 지도자가
현실에서도 나타나주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