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 윗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수상내역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근사한 책일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기대를 잔뜩 안고 펼쳐보게 된 책, 하지만 화려한 수상내역만큼 재미도 보장된걸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재밌다. 
너무 재밌어서 한번 잡으면 단숨에 읽어버릴 수밖에 없다.
13살, 천재소녀 루와 18살, 노숙하는 소녀 노의 전혀 불가능해보이는 우정이,
나날이 망가져가는 노를 끝까지 감싸주는 루의 헌신적인 노력이,
나같이 다 커버린 어른에겐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눈물겹다.
책장이 술술 넘어갈만큼 재미도 있는데 감동까지 있는데다
노를 더이상 도와줄 수 없는 현실에 루와 함께 안타까워하게 되며
어느새 루의 책임감에 박수를 치게 되고 
안타깝지만 부모로선 천만다행인 결말에 휴~ 하고 안도하게 된다.
루의 눈과 생각을 좇아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며  
같이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흡인력이 정말 대단한 책이다.

루는 아이큐 160의 지적 조숙아다.
어릴적 꿈은 교차로에 서있는 빨간 신호등이 되는 것이었고
백과사전은 반복해 읽어 다 외워버린지 오래.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역에 나가 사람들의 온갖 감정을 지켜보는
참 별스런 취미까지 가진 아이다.
월반을 할만큼 똑똑하지만 자기 구두끈 하나 제대로 매지 못하고
자기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과는 당연히 잘 어울리지 못하며
집에선 혼자 온갖 희한한 실험에 몰두하고
루의 엄마는 동생 타이스를 잃고나서부터는 반쯤 아니 완전히 넋이 나가있으니
집안 환경까지 평범치 않다.
루의 아빠는 루를 돌봐주고 직장에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나이인 루에게는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루는 역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노숙하는 홈리스 소녀, 노에게 이상하게 끌리게 되고
마랭 선생님의 발표수업 주제인 "노숙자" 의 자료수집을 위해
노를 자주 만나게 되면서 노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노를 혼자 두고 싶지 않단 생각까지 하게 된 루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하게 되는데
앞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역을 찾아
사람들의 온갖 표정 살피기를 즐겨하는 루가,
더러운데다 자기한테 툴툴대기나 하는 노를 끝까지 감싸주는 루가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동생 타이스를 잃은 후 표정을 잃어버린 엄마의 표정을
반갑게 맞이하고 안타깝게 헤어지는 
역에 있는 사람들 표정 속에서 찾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비록 동생 타이스는 지켜주지 못했지만 
나약한 자기 힘만으로도 노는 충분히 지켜줄 수 있지 않을까? 
루가 이런생각을 했던건 아닌지~~

노가 루의 아파트 6층에서 황홀한 야경을 지켜보는 장면에선 코끝이 찡해왔다.
그동안 노에겐 춥고 비참하게만 느껴졌을 세상,
그런 세상을 루의 따뜻한 아파트에서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게 되는 장면은
난생 처음 자기를 따뜻하게 받아준 루가 만들어준 따뜻한 배려이기에 더 감동적이다.

루와 같은 반 친구 뤼카를 불러내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려보라고 한후
"그게 바로 학생이 받을 점수입니다." 라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도 아주 수시로 독설을 내뱉는 마랭 선생님과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2번째 듣고 있는데다 수업태도까지 영 불량하지만
얼굴도 빼어나고, 덩치도 좋고 루한테만큼은 한없이 자상한 뤼카는
무겁기만 할 것 같은 이 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노의 모든걸 감싸주려는 기특한 생각을 천재 소녀란 점만 빼면
루는 아주 어린 13살 소녀,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서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때때로 등장하는 문장 뒤에 붙은 괄호 안 루의 부연설명은 
너무 세세해서 꼭 변명 같기도 하고
한창 종알대기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의 비밀 일기 속 속마음을 엿보는 기분이 들게 해서 
쿡쿡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게 두려워 
정말로 걸릴 수 있는 온갖 병을 상상한다든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때마다  "10분후로 순간이동", "즉각 현실 복귀 기능" 과 같이
누가 천재소녀 아니랄까봐 상상력을 총동원해 만들어낸 기능들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

더없이 풍요로워진 세상이지만
정작 춥고 배고픈 사람들은 외면해버리는 차가운 사회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루의 마음이 전해져 많이 안타까웠지만
루와 노의 불가능할 것 같은 우정에 같이 웃음짓게 되는 그런 책이다.
어리게만 보이던 루가 가슴아픈 일을 겪으면서 서서히 자라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그런 책이기에
아이들의 순수한 감성을 느껴보고 싶은 어른들에게도
또래 친구의 아름다운 우정에 같이 웃음 짓고 눈물 흘리고 싶은 청소년들에게도
이 책을 꼬옥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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