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아난다면 살아난다
최은영 지음, 최정인 그림 / 우리교육 / 2009년 6월
평점 :
교통사고, 중환자실, 심장병, 뇌사, 장기기증~
책 속에 등장한 이 몇개의 단어들만으로도 이 책은 참 무겁게 느껴집니다.
올해 5월에 돌아가신 저희 친정엄마 역시 중환자실에 계시다 뇌사판정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떼려면 장기기증을 해야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은터라
근호와 그 가족들의 아픔이 제게도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근호는
703호 영매 할머니와 만나게 되고
근호가 이미 죽어 혼이 되었으며 원한이 많아 이승을 떠돌고 있다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근호는 점점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할머니 병동에서 307호에 심장병으로 입원한 형수의 동생, 동수를 만나게 됩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동수를 안타까워하던 근호는
정말 어려운 결심을 하게 되고 동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선물을 하고 떠납니다.
한 사람의 장기 기증을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새 삶을 얻을 수 있는지,
장기기증을 서약한 순간부터 보험 하나도 맘대로 들 수 없단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장기를 사후 기증하겠다는 분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저 또한 너무도 잘 알지만
바로 내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란 말을 들으면
그 결정이 얼마나 힘든지 엄마일을 통해 저 또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자발호흡이 더이상 불가능해 인공호흡기만 떼면 바로 사망하실 수 있단 말을 듣고도
엄마의 장기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쉽게 내어줄수가 없었습니다.
패혈증, 당뇨합병증, 신장투석 등으로 망가질대로 망가진 장기였지만
엄마 시신이라도 온전히 보호해드리고픈 마음이 생기더군요.
근호의 엄마 역시 저와 같은 생각이라 그 마음이 백분 이해돼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새할머니의 못마땅한 시선을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했던 근호는
근호가 누구보다 잘 돼야한다고 늘 강조하는 엄마의 극성스런 학구열과
엄마와 새할머니의 잦은 신경전을 모른척 외면하는 새아빠의 무관심속에
참 힘들어하던 아이였습니다.
술 마시면 엄마를 툭하면 때리는 아빠를 피해 엄마를 따라 형과 함께 집을 나온 동수는
친구들과 노는 시간도 포기한채 형을 돌봐야하는 불쌍한 아이였고요.
영매 할머니는 보고싶지 않은 넋이 자꾸만 보여
아픈곳도 없는데 툭하면 병원에 입원하고 사사건건 모든것이 못마땅한 할머니였습니다.
그런 못된 아빠도 자기 아빠라고 보고 싶다 외치고.
친구랑 노는 것보다 형이랑 노는게 더 재밌다는 착한 동수를 제외하면
이 책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은 지금 자기가 처한 현실을 너무나 힘들어하는
저마다 한가지씩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수를 매개체로
영매 할머니는 자기의 특별한 능력을 더이상 괴로워하지 않고
그 능력을 이용해 남을 돕게 되고 근호는 새 삶을 선택하게 된다는 설정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당장 이순간 바꿀 필요가 있단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꿈꾸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 동수를 통해
힘들다 생각되고, 너무도 평범해 지루하다 여긴 우리의 삶이
남들이 그토록 원하는 참 괜찮은 삶임을 깨달을 수 있었거든요.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무거운 죽음에 관한 이야기지만
우리 삶의 방식을 조금만 바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가족들과 의사소통만 충분히 해도 인생이 180도로 바뀌어
우리가 그토록 꿈꾸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이 책은 조용히 말해줍니다.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 책장 넘기기가 녹록치 않았지만
죽음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작가의 메시지가 너무도 잘 전달된 책이라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