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 - 어슬렁어슬렁 누비고 다닌 미술 여행기
류동현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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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참 좋아하지만 여행 에세이는 한번도 손에 쥐어 본 적 없다. 현지에서 오감을 통해 느낀 전율이 오장육부에 절절히 스며들어야 의미가 있지, 타인의 ‘눈도장’, ‘발도장’을 통해 간접체험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그 막연한 생각의 고리를 끊게 된 건 코로나19로 ‘떠남’이 제한된 시기가 길어진 덕분(?)이다. 이 시기에 방구석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졌는데 그 중 하나가 여행 관련 간접 체험이다. 다양한 체험 수단이 있으나 책을 좋아하니 여행 에세이가 선택된 것이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여행 에세이는 이탈리아의 예술과 풍경 사진이 어우러진 <어쩌다 이탈리아, 미술과 걷다>이다. 책은 베네치아에서 시칠리아에 이르기까지 35개 도시의 삶, 역사, 예술, 문화, 자연이 그려내는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다.




저자는 책을 처음 구상할 때, 풍경과 예술 사진이 어우러진 이미지 중심의 책을 만들고자 했으나 이내 방향을 바꾸었다.



“이탈리아를 둘러본다는 것은 

그림과 풍경과 글이 

제 나름의 역할을 발휘해야 하는 

‘광활한’ 인문학적 세계였다.” P13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어떤 행위를 하도록 영감을 던져준다는 면에서 예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저자가 35개에 이르는 도시를 거닐며 이 광활한 인문학적 세계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도 책, 영화, 음악과 같은 예술 덕분이었다. 저자는 수없이 접한 다양한 책, 영화, 음악이 여행의 동인(動因)이라 말한다. 가령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영화 속 배경인 ‘아레초’를 찾아가고, 존 러스킨의 <건축의 일곱 등불>을 읽고 작가가 찬사를 보낸 산미켈레성당이 궁금해 ‘루카’라는 작은 도시로 떠난다. 예술의 또 다른 가치는 영감의 연결고리를 무한대로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책에 영감의 연결고리로 가득하다. 영화 촬영지로 자주 나오는 ‘피엔차’라는 도시 풍경을 바라보며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떠올리며 작품 이야기를 곁들이고,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도입부를 언급하며 ‘피엔차’를 둘러본 단상을 들려준다.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보르헤스는 “세계는 지리적으로 펼쳐진 도서관이고, 여행은 세계의 한 곳을 골라 읽는 독서”라고 말했다. 독서, 특히 여행 에세이를 읽는 행위는 ‘떠남’이 제한된 이 시기에 방구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여행법이 아닐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고 싶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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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맛 - 은퇴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한혜경 지음 / 싱긋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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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욜로족이 아니라 파이어(FIRE)족이다. ‘경제적 자립, 조기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조기 은퇴를 목표로 직장 초년생 때부터 악착같이 절약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만드는 데 열중인 사람들을 말한다. 지난달 3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파이어족’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다. 2030 직장인 707명을 대상으로 ‘본인이 파이어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명 중 1명꼴인 27.4%가 ‘그렇다’고 답할 정도로, 일찍이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열기를 가까이에서 느낀다. 직장 다니는 사람 삼삼오오 모인 곳에 끼면 ‘은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한 번은 선배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날 것의 언어를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런 거다.


노력해도 미래가 불투명한데

어차피 쫓겨날 바에야 내 발로 걸어 나오겠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은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조기 은퇴 말이다.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장기간 저축, 긴축해야 한다. ‘욜로족’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결심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 설사 ‘파이어족’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꿈에 그리던 은퇴를 한다고 해서 과연 원하던 삶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돈’만 있다고 성공적인 은퇴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은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돈’만 있다고 은퇴 후 삶이 풍요롭지는 않다는 것을 은퇴전문가 한혜경이 <은퇴의 맛>을 통해 리얼하게 그려낸다. 저자의 또 다른 책 <은퇴의 말>이 대한민국 은퇴자를 심층 인터뷰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은퇴의 맛>은 은퇴전문가 본인이 실제로 은퇴 초보자가 되어 겪은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맛본 달콤 씁쓸함을 풀어낸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는 법, 언제나 그렇지만 일정 자금 마련은 특히 은퇴 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 여유로운 자금 마련만이 성공적인 은퇴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은퇴 예정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은퇴 후 ‘마음’이다. 저자는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안착하기까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모든 이별이 마음 시리지만, 직장과의 이별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다고 말한다. 앞으로 여행 다니면서 지긋지긋한 일터에 안 나와도 되겠다며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말이 그냥 남들이 하는 속 편한 얘긴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쓸모’가 줄어든다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쓰라리고 허한 마음 치유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나 걸린다.

“이별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이별에는 애도와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직장이나 공적 관계망과의 이별도 예외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P24


책 속 이야기는 그저 초보 은퇴자라면 누구나 읊어대는 넋두리가 아니다. 은퇴 연차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정리된 ‘은퇴 후 감정 매뉴얼’같은 느낌이다. 은퇴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민의 진폭까지 미리 알 수 있어 ‘파이어족’과 같은 은퇴예정자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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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말 -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한혜경 지음 / 싱긋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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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의 작가 브로니 웨어가 쓴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5가지> 가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을 돌보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의 종점에서 쏟아내는 후회가 비슷하더라는 것이다. “돈을 더 벌었어야 했는데, 고대광실 같은 곳에서 한번 살아봤더라면, 더 악착같이 살걸”이라고 말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후회 목록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정작 ‘나’다운 삶을 못 살아본 시간을 후회하더라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게 후회라지만, 인생에서 크게 두 번은 꼭 찾아오는 것 같다. 생의 종점에서 한 번, 그리고 은퇴 후 한 번.

 은퇴전문가 한혜경 교수는 1000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은퇴자를 심층 인터뷰한 책『은퇴의 말』에서 은퇴남들이 전하는 ‘은퇴 순간의 진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많은 은퇴자들을 만나면서 저자가 수없이 들었던 단어가 바로 ‘후회’였다고 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지금 이런 생각이 들 줄 진작 알았더라면’ 같은 그들의 말 속에는 항상 ‘후회’가 가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보고 들은 은퇴남들의 후회 목록에는 어떤 것들이 들어 있을까. 수많은 후회 목록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악착같이 일만 하다 놓친 것들에 대한 후회,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의 심신을 함부로 대했다는 후회, 가족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지 못했다는 후회, 마지막으로 100세 시대를 살고 있음을 망각하며 살아온 후회들을 들려준다.


 


 저자가 꽤나 세부적으로 은퇴자들의 후회 목록을 밝히는 이유는 100 세 시대를 사는 지금의 3, 40대 직장인들이 은퇴할 때 후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생 6, 70년 시대의 ‘은퇴’란 오히려 축복이었다. 하지만 100세 시대의 은퇴는 또 다른 50년의 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인생의 청사진을 그리고 다시 수정해도 괜찮은 시간이 꽤 길어졌다는 뜻이다. 경황없이 맞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후회란 따라오게 마련이다. 100세 시대 후회 없는 은퇴를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인생을 보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저자의 제안 중 ‘행복의 포트폴리오’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즉, 행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나만의 놀이를 여러 개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놀이가 무엇인지 미리 알아 두는 것도 중요하다. 일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일이 잘 안되면 쉬이 불행하지만, 행복감의 원천인 놀이를 여러 개 마련해두면 일에서 느끼는 피로가 상쇄되어 금방 회복된다.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인생의 청사진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이 책 속에 나오는 인생 선배들의 시점을 빌려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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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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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불리는 권문현 지배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방영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다. 권문현 지배인은 1977년부터 호텔로 들어오는 차를 맞이하고 로비 문을 여는 도어맨(doorman) 일을 44년째 해온 '서비스 장인(匠人)'이다. 당시 출제된 문제는 이 '서비스 장인(匠人)'이 갑질 고객들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마법의 질문이 무엇일까,였다. 정답은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였다. 갖은 진상 고객 응대법에 대해 들어봤지만, 명함 하나 달라는 질문은 무척 신선했다. 이러한 응대법이 나오게 된 권문현 지배인의 철학이 궁금해 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결론은 이거다. 갑질하는 심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 즉 '내가 누군지 좀 알아달라'라는 심리를 그는 꿰뚫어 본 것이다.

“자기 얘기에 귀 기울여 달라는데 그까짓 것 한번 들어주지 뭐 하고 일단 듣습니다. 웃는 낯으로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 하면 조금 누그러집니다. 무슨 사업하시느냐는 둥 다른 이야기를 섞어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러다 보면 손님이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습니다. '척'하는 시늉의 기술이 중요합니다. 지는 것 같지만 결국 이기는 방법입니다."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콘래드 호텔 도어맨 권문현 지배인≫기사 中

방송 이후 권문현 지배인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직업의 세계 특집에 출연했다. 그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 내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드디어 이러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호텔밥 44년, 문 뒤에서 혹은 앞에서 묵묵히 고객을 기다리던 권문현 지배인의 ‘호텔 인생’을 담은 책 <전설의 수문장>이 출간됐다.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 권문현 ‘저자’에 대한 소개를 제대로 하고 싶다. 1977년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에서 고객들과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호텔의 최전선, 도어맨으로 시작해 36년 일하고 2013년 정년퇴직했다. 그해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콘래드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됐다. 한 호텔에서 정년을 채운 직원도 드문데. 정년 지나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된 도어맨은 전무후무하다. 옛날 옛적 호텔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호캉스 전성시대가 도래한 오늘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호텔 문 앞에서 가장 먼저 고객을 맞이하기가 어디 쉬운가. 책에는 이 엄청난 일을 묵묵히 해온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이 호텔과 함께한 긴 세월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디테일’이다. 거창한 게 아니라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을 챙기는 것 말이다. 자주 찾는 고객에 대한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고객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익히는 것이다. 그 고객이 찾아왔을 때 “OOO 장관님 잘 지내셨지요?”라고 환대하는 순간, 권 지배인은 고객의 마음의 ‘도어’를 연 것이다. 또한, 그가 외우는 정재계 인사들의 차 번호만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차 번호 외워 두고 고객의 성향에 따라 차가 들어올 때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외교관 차가 들어오면 차에 달린 국기만 보고도 어느 나라 외교관인지 재빨리 알아야 응대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국기를 달달 외우느라 벅찼던 재미난 경험까지 들려준다. 그뿐이랴. 9시간 근무 내내 동분서주하면서도 영어 학원은 열심히 다닌 덕분에 한식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외국인 손님들 응대도 거뜬하다. 온갖 욕설을 쏟아내는 '진상 손님' 마크도 그의 담당이다. 악질 손님도 그가 건네는 ‘마법의 질문’ 앞에선 맥을 못 춘다는 것에 탄복할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늘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44년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친절을 베풀어라. 친절을 베풀면 언젠가 돌아온다.”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주고, 환대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작은 친절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말한다. 마크 트웨인은 “친절은 귀 먼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라고 말했다. 저자가 긴 시간 동안, ‘친절’이라는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기에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이라 당당하게 불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책 서문에 그냥 호텔 직원 말고 ‘참 괜찮은 권문현이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문구가 있다. 비록 저자를 직접 뵌 적은 없으나 광활한 흰 종이를 가득 채우는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의 ‘찐’인생 이야기에 ‘환대’를 간접 경험한 기분이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충분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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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절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황규관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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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문학을 읽는가. 혹은 왜 문학이 필요한가. 문학에 기대하는 바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단편적인 재미부터 삶의 위안까지 문학의 소임은 폭넓다. 개인적으로 문학이 현실에 대한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문학의 필요성을 찾는다. 위화감이란 자신의 인식 영역을 넘어선 사물이나 일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다. 자신의 인식 영역을 넘어서면 일단 난감하고 불편하다. 그러하다고 굳게 믿어온 자신의 인식을 의심하고 재편해야 할 수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에 산재한 진실의 파편을 외면하고 살아온 이기심이 탄로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엿보인다. 이 때문에 위화감 느끼기를 꺼린다면 개인의 삶에, 더 나아가 역사에 ‘진보’란 없을 것이다. 역사는 개개인이 현실에 대한 위화감을 딛고 인식의 오류를 바로잡으며 진보해왔다. 이 과정에서 문학이 해낸 역할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과 삶’, ‘자연과 문명’에 대해 강인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해온 황규관 시인은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절>을 통해 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문학은 필치가 뛰어난 소수 사람들이 써 내려간 텍스트가 아니다. 인식의 오류를 감당하고, 현실에서 무시되거나 왜곡된 진실을 찾으려는 움직임 자체가 문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시나 소설 같은 특정 텍스트를 열심히 읽자는 협의를 넘어선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한다는 광의에 이른다. 가령 코로나19 와 같은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고, 무분별하게 자연을 파괴해 경제발전을 꾀하는 현실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부단히 상상해야 한다. 시인은 그것이 현대인의 책무라고 말한다. 시인은 그 본보기로 자신이 살아온 과거와 지금 서 있는 풍경의 차이에 대한 질문과 자기 고백,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돌아가는지, 인간의 정치라는 것이 자연이나 혹은 다른 인간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태학적 시각을 보여준다. 앎이 부족해 무엇이 문제인지 미처 알지 못한 사회 곳곳의 병폐를 포착한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압권이다. 책을 통해 문학은 내가 보는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 진실은 자신의 경험치 너머에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부단히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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