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감수성’이 뭘까. 직관적으로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언어로 단박에 풀어내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직 <표준국어대사전>에 오르지 않은 만큼 이 단어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대중적으로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수성’은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즉, 언어 감수성이란 언어라는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마음 혹은 언어 세계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믿음은 없는지 바라보려는 적극적인 태도라고 풀이해 볼 수 있겠다. '언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은 타인과의 소통의 수단인 언어 세계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언어의 새로고침을 위해 세상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다. 반대로 언어 감수성이 낮다면 언어 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며, 그 세계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나 믿음을 지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이는 누군가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시적으로 품고 있다는 뜻이다. 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네가 예민하다’는 방어와 변명의 언어습관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가치를 담은 언어를 사용하자고 하지, 누구도 차별과 권위의 언어로 타인을 공격하고 배제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은 차별과 권위의 언어로 상처를 주고받고, 심지어 인권이 짓밟히는 이야기도 매일 접하게 된다. ‘나는 차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선량한’ 언어 사용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량한’ 언어 사용자들에게 죽비 같은 가르침을 주는 책이 있으니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가 쓴 <언어의 높이뛰기>다.
저자는 너무 일상적이어서 감수성을 갖기 어려운 것이 언어인 만큼, 언어 감수성을 가지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언어 감수성을 높여야 할까. 저자에 따르면, 말이든 글이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말하고 글 쓰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고 읽히기 위해서지 ‘나’듣기 좋으라고, 읽기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니다. 결국, 언어는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일이다. 그러니 상대의 감수성에서 어떻게 들리고 읽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화자와 청자의 민감도는 그 격차가 크다. 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 가장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언어 감수성이다. 말을 할 때, 글을 쓸 때 우리는 듣는 사람 혹은 읽는 사람의 감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잘 들리고 잘 읽을 수 있다. P21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가치를 떠받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왜 내 말을 오해하고 난리야!’ 가 아니라 ‘왜 내 말이 그렇게 이해됐을까?’를 곰곰이 따져보는 능력, 높은 언어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저자는 흔히 조롱의 이름표가 된 ‘프로불편러’를 자처한다. 언어 속 이데올로기를 덜어 내고자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문제점을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혹시 내 편안함이 타인의 불편함 위에 만들어지는 건 아닌지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프로불편러’라고 불린다면 더욱 영예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1. 다음 <보기> 중 차별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단어를 고르시오(2점)
① 유색인종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다
②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다
③ 수면 위로 오른 ‘타투 합법화’
④ ‘종교인 과세’47년간 제자리∙∙∙정치권 ‘발빼기’급급
2. 다음 <보기> 중 문법에 맞지 않은 문장을 모두 고르시오(3점)
① “신지영 님,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② “이 옷은 신상품이세요.”
③ “제가 아시는 분이 해 준 얘기예요.”
④ “고객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위 두 문항은 언어 감수성 향상을 위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언어 감수성 평가 문제지 중 일부다. 1번의 정답은 ②이다. 익숙하게 사용하던 ② 표현을 통해 우리 사회는 결함을 감추기 위해 화장을 하는 것도, 화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 민낯도 모두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이중성을 발견하게 된다. 2번의 정답은 ①, ②, ③이다. ‘아메리카노’가 ‘나오시’는 나라에서 문법적으로 틀린 줄 알면서도 그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통해 ‘일상의 갑질’문제가 언어에 드러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복잡한 호칭어 속 불편한 진실, ‘외국인’이라는 단어 속 고정관념, 코로나19 속 언어 권력의 문제 등 언어 감수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책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