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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의 맛 - 은퇴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한혜경 지음 / 싱긋 / 2021년 3월
평점 :

이제 욜로족이 아니라 파이어(FIRE)족이다. ‘경제적 자립, 조기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로, 조기 은퇴를 목표로 직장 초년생 때부터 악착같이 절약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만드는 데 열중인 사람들을 말한다. 지난달 3일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파이어족’을 주제로 설문 조사를 했다. 2030 직장인 707명을 대상으로 ‘본인이 파이어족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4명 중 1명꼴인 27.4%가 ‘그렇다’고 답할 정도로, 일찍이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열기를 가까이에서 느낀다. 직장 다니는 사람 삼삼오오 모인 곳에 끼면 ‘은퇴’라는 단어를 자주 듣게 된다. 한 번은 선배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날 것의 언어를 최대한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런 거다.
“노력해도 미래가 불투명한데
어차피 쫓겨날 바에야 내 발로 걸어 나오겠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쉽지가 않다. 은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것도 조기 은퇴 말이다. ‘파이어족’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해도 수입의 상당 부분을 장기간 저축, 긴축해야 한다. ‘욜로족’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결심은 금방 무너지고 만다. 설사 ‘파이어족’으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꿈에 그리던 은퇴를 한다고 해서 과연 원하던 삶을 이뤘다고 할 수 있을까. ‘돈’만 있다고 성공적인 은퇴라고 할 수 없다. 진짜 은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돈’만 있다고 은퇴 후 삶이 풍요롭지는 않다는 것을 은퇴전문가 한혜경이 <은퇴의 맛>을 통해 리얼하게 그려낸다. 저자의 또 다른 책 <은퇴의 말>이 대한민국 은퇴자를 심층 인터뷰한 이야기를 담았다면 <은퇴의 맛>은 은퇴전문가 본인이 실제로 은퇴 초보자가 되어 겪은 시행착오, 그 과정에서 맛본 달콤 씁쓸함을 풀어낸다.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는 법, 언제나 그렇지만 일정 자금 마련은 특히 은퇴 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 여유로운 자금 마련만이 성공적인 은퇴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은퇴 예정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은퇴 후 ‘마음’이다. 저자는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안착하기까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모든 이별이 마음 시리지만, 직장과의 이별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다고 말한다. 앞으로 여행 다니면서 지긋지긋한 일터에 안 나와도 되겠다며 부러워하던 사람들의 말이 그냥 남들이 하는 속 편한 얘긴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쓸모’가 줄어든다는 것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쓰라리고 허한 마음 치유하는 데에만 시간이 꽤나 걸린다.
“이별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이별에는 애도와 치유 과정이 필요하다. 직장이나 공적 관계망과의 이별도 예외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P24
책 속 이야기는 그저 초보 은퇴자라면 누구나 읊어대는 넋두리가 아니다. 은퇴 연차에 따라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정리된 ‘은퇴 후 감정 매뉴얼’같은 느낌이다. 은퇴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민의 진폭까지 미리 알 수 있어 ‘파이어족’과 같은 은퇴예정자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