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수문장
권문현 지음 / 싱긋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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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불리는 권문현 지배인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방영된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다. 권문현 지배인은 1977년부터 호텔로 들어오는 차를 맞이하고 로비 문을 여는 도어맨(doorman) 일을 44년째 해온 '서비스 장인(匠人)'이다. 당시 출제된 문제는 이 '서비스 장인(匠人)'이 갑질 고객들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마법의 질문이 무엇일까,였다. 정답은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였다. 갖은 진상 고객 응대법에 대해 들어봤지만, 명함 하나 달라는 질문은 무척 신선했다. 이러한 응대법이 나오게 된 권문현 지배인의 철학이 궁금해 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결론은 이거다. 갑질하는 심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 즉 '내가 누군지 좀 알아달라'라는 심리를 그는 꿰뚫어 본 것이다.

“자기 얘기에 귀 기울여 달라는데 그까짓 것 한번 들어주지 뭐 하고 일단 듣습니다. 웃는 낯으로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시겠어요?' 하면 조금 누그러집니다. 무슨 사업하시느냐는 둥 다른 이야기를 섞어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그러다 보면 손님이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습니다. '척'하는 시늉의 기술이 중요합니다. 지는 것 같지만 결국 이기는 방법입니다."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콘래드 호텔 도어맨 권문현 지배인≫기사 中

방송 이후 권문현 지배인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직업의 세계 특집에 출연했다. 그의 인생과 철학을 담아 내기에는 다소 부족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드디어 이러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 호텔밥 44년, 문 뒤에서 혹은 앞에서 묵묵히 고객을 기다리던 권문현 지배인의 ‘호텔 인생’을 담은 책 <전설의 수문장>이 출간됐다.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 권문현 ‘저자’에 대한 소개를 제대로 하고 싶다. 1977년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에서 고객들과 제일 먼저 인사를 나누고 친분을 쌓을 수 있는 호텔의 최전선, 도어맨으로 시작해 36년 일하고 2013년 정년퇴직했다. 그해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 콘래드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됐다. 한 호텔에서 정년을 채운 직원도 드문데. 정년 지나 정직원으로 스카우트된 도어맨은 전무후무하다. 옛날 옛적 호텔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호캉스 전성시대가 도래한 오늘날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호텔 문 앞에서 가장 먼저 고객을 맞이하기가 어디 쉬운가. 책에는 이 엄청난 일을 묵묵히 해온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이 호텔과 함께한 긴 세월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호텔업계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으로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로 ‘디테일’이다. 거창한 게 아니라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소한 부분을 챙기는 것 말이다. 자주 찾는 고객에 대한 최신 정보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한다. 고객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익히는 것이다. 그 고객이 찾아왔을 때 “OOO 장관님 잘 지내셨지요?”라고 환대하는 순간, 권 지배인은 고객의 마음의 ‘도어’를 연 것이다. 또한, 그가 외우는 정재계 인사들의 차 번호만 3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차 번호 외워 두고 고객의 성향에 따라 차가 들어올 때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말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외교관 차가 들어오면 차에 달린 국기만 보고도 어느 나라 외교관인지 재빨리 알아야 응대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국기를 달달 외우느라 벅찼던 재미난 경험까지 들려준다. 그뿐이랴. 9시간 근무 내내 동분서주하면서도 영어 학원은 열심히 다닌 덕분에 한식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외국인 손님들 응대도 거뜬하다. 온갖 욕설을 쏟아내는 '진상 손님' 마크도 그의 담당이다. 악질 손님도 그가 건네는 ‘마법의 질문’ 앞에선 맥을 못 춘다는 것에 탄복할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늘 하신 말씀을 되새기며 44년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친절을 베풀어라. 친절을 베풀면 언젠가 돌아온다.”눈이 마주치면 먼저 웃어주고, 환대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작은 친절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법이라고 말한다. 마크 트웨인은 “친절은 귀 먼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라고 말했다. 저자가 긴 시간 동안, ‘친절’이라는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했기에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이라 당당하게 불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책 서문에 그냥 호텔 직원 말고 ‘참 괜찮은 권문현이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문구가 있다. 비록 저자를 직접 뵌 적은 없으나 광활한 흰 종이를 가득 채우는 '전설의 수문장(守門將)'의 ‘찐’인생 이야기에 ‘환대’를 간접 경험한 기분이다.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충분히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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