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장 - 정규 1집 STELLA I
스텔라장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노래듣고 뮤비 보면 안 살 수가 없는 앨범 ㅜ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세기 1장과 고대 근동 우주론
존 H. 월튼 지음, 강성열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평소에 창세기 1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게 가능한 일인지 아닌지 검토하는 것보다, 그 당시 사람들의 창조에 관한 인식, 설화,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교회에선 들어보지 못한 것이며 들어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릴땐 창조를 문자 그대로의 사실처럼 받아들였지만 점점 커가면서 신화나 상징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나는 성경의 모든 구절들이 상징과 같단 생각을 한다. 

여튼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성경을 진리로 여겨서 그런지 신화나 설화는 지어낸 이야기라며 비교를 거부한다. 그래서 고대 우주론이나 신화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신화가 가짜이고 인간이 지어낸 이야기라 하기엔 성경과 유사한 지점이 너무 많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고대 근동 우주론을 베낀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저 성경만이 진리라고 외치는 것은 편협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설사 성경이 그 당시 근동 우주론과 비슷할 지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그들의 기록과는 다르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넘기는데, 나는 성경이 진리라면 어떤 것과 비교하더라도 진리가 빛바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탁월함이 드러나야 진정한 진리가 아닐까?

 

이 책은 창세기 1장이 어떤 점에서 고대 근동 우주론과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 알려준다. 표로 정리한 것이 있어 한 번 봤을 때 쉽게 이해하긴 어렵지만 더 자세하고 확실한 비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겐 유용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현대의 사고에서 창세기 1장을 읽을 때의 오류를 바로 잡아준다. 그 오류란 서론에서부터 반복적으로 지적하는데, 현대인은 창세기 1장을 물질적인 창조로 보는 해석들을 하지만,  고대인에겐 물질적인 창조보다는 기능과 질서를 신이 정했다는 것이 더 중요 했다는 것이다. 성경 또한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되었다지만 고대인들이 쓴 것이기에 그들의 사고를 넘어서는 기록은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대 근동 사람들이 보기에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지점을 드러내어 하나님이 하나님인 줄 알게 하려고 하심이 아닐까.

 

하나님은 태초에 빛을 창조하신 것은 물리적인 빛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을 창조하셨다는 것, 고대 근동 우주론과 유사하다. 6일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을 취함으로 창조를 완성하셨다는 것 또한 6일간의 창조에서 신이 머물 신전을 건설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다른 점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는 아담을-어떤 특수한 계층만 신을 닮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신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창조한 것들을 인간을 '위해' 만드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해야 했지만 신의 목적을 위한 절대 복종의 노예가 아니라 인간에게 복을 주기 위한 거였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리고 어떤 건물, 어떤 지역이 아닌 우주 전체를 신이 머무는 신전으로 보았다는 점에서도 다르다고 언급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와 닿진 않았다. 

 

이 책의 1,2,3장은 고대근동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쉽게 읽히는 구간은 아니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개념들이 수도 없이 나오고, 히브리어, 셈족어, 등등 어려운 말들이 나와서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데3장 끝부분에 다행히(!) 결론과 요약이 있어 그 부분만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면 4장부터 본격적으로 창세기 1장에 관한 내용을 이해하기에 어렵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볼 예정이라면  

1. 서론과 3장 끝의 요약을 먼저 읽고  

2. 4-5장 결론까지 읽고  

3.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땐 다시 앞으로 돌아가 1-3장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자서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치부를 덮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변명하기 바쁜 글이라는 게 느껴지면 싫고,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꾸며놓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노라 라는 외면적인 성공으로 자신의 삶 전체가 성공했다라고 자화자찬하는 글을 읽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비슷한 의미에서 '책으로 나온' 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기라곤 하지만 자서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일기들이 많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작고 사소하여 지루한 일들은 감추고, 흥미를 끌 만한 것들만 집어넣고, 주로 자신의 감정 변화에 대해서만 자세하게 기록할 뿐, 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얼마나 자주 나오건 자세하게 알 방법이 없다. 등장인물이 실존하고 있을 경우,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요소는 모조리 편집되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수백 년 전의 '난중일기' 같은 것이 아닌 이상 현대에 일기를 책으로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솔직히 지루하다. 재미가 없다. 제목은 나의 투쟁이면서 흔히 생각하는 투쟁도 없고,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나, 이정도면 나는 성공했지 라는 허세도 없다. 또한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바쁜 글 역시 보이지 않는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면서도 여러가지 단편들을 넣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이야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 딱 두 개만 있다. 어떤 하나의 이야기로 글을 쓰면 몇 페이지 정도로 쓸 수도 있을 텐데 수백페이지를 낭비(?)하며 기록하니 나 또한 그의 삶 속에 들어가서 흐르는 시간까지 같이 보내는 느낌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는 가족의 치부, 자신의 치부를 여실 없이 드러낸다.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말들, 자신의 머릿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온갖 생각들. 성적인 것들까지 일일이 다 기록하고 있다. 5천만인 한국에서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데, 인구가 500만인 나라 노르웨이에서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런, 또는 소송까지 갈 수 있는-작가는 실제로 삼촌에게 고소를 당했지만-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크나우스하다'=어떤 일을 세세히 다 기억하다, 나의 투쟁을 읽었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된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이 다른 서평처럼 '멈출 수가 없다' 정도로 강렬하진 않았다. 그만 읽으려면 얼마든지 그만 둘 수 있었고, 이 책 어디에서도 어떤 의미 있는 말을 한다던가, 이후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예상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서 그만 읽든 상관없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 충격적일 만큼 화제가 된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다 말할 수 없고, 늘 자기 안에서 삭히고, 혼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 때면 난 쓰레기인가 하며 자학하고, 그런 말들은 (당연하게도) 꺼내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이 작가는 그런 말들까지 다 까발렸으니까. 그래서 내 생각에 '크나우스하다' 라는 말은 단지 '세세히 기억하다' 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 할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니, 부디 그런 의미가 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솔직해 지는 것. 이건 누구에게 미룰 것 없이 자신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허세를 부리고 센 척, 강한 척, 괜찮은 척, 잘 사는 척을 하며 속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데 어린아이 땐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부모님이든 친구에게든 다 말하고 다니지 않았나? 그래서 그 때의 친구들은 정말 오래 가지만 다 커서 사귄 친구는 오래가기 어렵 듯이..(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이다' 라는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양의 탄생 -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
이광주 지음 / 한길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양은 무엇을 교양이라고 할까? 교양 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교양 있는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등등 교양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다. 요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과연 배움의 끝? 이라기보다는 배움을 통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 우리 사회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이란 대체로 지식이 많고 점잖은 사람을 칭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조금만 나서도 '배운 사람이 점잖지 못하게..'라며 무안을 주며 행동을 제약한다. 외국은 어떤 사람을 교양 있다고 말하고, 그런 사람은 어떻게 행동할까?

   <교양의 탄생>은 유럽에 한정되어 '교양'이란 무엇인지, 큰 개념과 어떤 종류의 교양이 있는지, 유명한 철학자, 예술가, 정치가, 경제학자 등등 수많은 분야에서 활동했던 교양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는지, 그 사람들이 말하는 교양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교양을 쌓아왔는지에 대해 30챕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페이지는 800페이지가 넘지만 30챕터로 나누어져 있으니 하루에 한 챕터씩이면 가볍게 볼 수 있다. 이 책에선 교양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몇 개만 선택해서 인용해본다.)     

 

'교양인이란 파우스트처럼 끊임없이 묻고 탐색하는 인간이다.

그 배움은 광장이나 살롱에서 나누는 담론을 통해 배양된다.

그러므로 교양인은 서재의 인간이 아니다...

교양인은 개인인 동시에 사교적, 사회적존재이다.'

 

'철학자란 키케로에게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모든 참뜻과 본성 및 원인을

인식하고자 노력하고, 더 잘 사는 도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그야말로 철학자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는 화가 조각가 건축가를 겸했듯이

철학자는 여러 학문의 조화를 강조했다.

당시 바람직한 미덕으로 부각된 재능이란 다양성과 동의어였다.'

 

 사실 이 책은 유럽 중심으로 교양인은 어떤 사람인가,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나와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동양에선 교양인을 어떻게 정의 내리는지도 궁금해진다. 어떤 점에서 일치하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 그리고 우리 시대에 와서는 왜 교양인에 대한 정의가 '점잖은 사람'이 되어버렸을까? 스스로 좀 더 공부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교양에 관심이 있었지만 사실 교양이 무엇인지는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이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긍휼, 예수님의 심장
하재성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는다. 좋은 일엔 감사하기 쉽지만 슬픈 일엔 감사하기 힘들고 원망하기에 바쁘다. 또한 반복되는 일상과 죄로 인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이 무엇인지 망각하고, 운명이란 이름 아래 모든 것을 내려 놓을때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상담학을 통해 비추어본 예수님의 삶은 그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를 외치고,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반박하며, 예언 만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악과 사건 이후 끊임 없이 죄된 본성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긍휼히 여기시어, 아들인 예수님을 통해 완벽히 '다' 이루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상처받은 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루만져 주셨는지, 생뚱맞아 보이던 그분의 말과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해 주고 있다. 그분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심이 얼마나 섬세하며 부드럽고 따뜻한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더이상 아파하고 낙망하지 말고 그분께 나아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나도 그분과 같은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결심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