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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나는 자서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치부를 덮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변명하기 바쁜 글이라는 게 느껴지면 싫고, 드라마틱한 사건들로 꾸며놓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노라 라는 외면적인 성공으로 자신의 삶 전체가 성공했다라고 자화자찬하는 글을 읽는 것이 껄끄럽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비슷한 의미에서 '책으로 나온' 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기라곤 하지만 자서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일기들이 많다. 삶 속에서 벌어지는 작고 사소하여 지루한 일들은 감추고, 흥미를 끌 만한 것들만 집어넣고, 주로 자신의 감정 변화에 대해서만 자세하게 기록할 뿐, 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얼마나 자주 나오건 자세하게 알 방법이 없다. 등장인물이 실존하고 있을 경우,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요소는 모조리 편집되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수백 년 전의 '난중일기' 같은 것이 아닌 이상 현대에 일기를 책으로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은 솔직히 지루하다. 재미가 없다. 제목은 나의 투쟁이면서 흔히 생각하는 투쟁도 없고,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나, 이정도면 나는 성공했지 라는 허세도 없다. 또한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바쁜 글 역시 보이지 않는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면서도 여러가지 단편들을 넣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이야기,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의 이야기, 딱 두 개만 있다. 어떤 하나의 이야기로 글을 쓰면 몇 페이지 정도로 쓸 수도 있을 텐데 수백페이지를 낭비(?)하며 기록하니 나 또한 그의 삶 속에 들어가서 흐르는 시간까지 같이 보내는 느낌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는 가족의 치부, 자신의 치부를 여실 없이 드러낸다.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말들, 자신의 머릿 속에서만 할 수 있는 온갖 생각들. 성적인 것들까지 일일이 다 기록하고 있다. 5천만인 한국에서도 한 두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데, 인구가 500만인 나라 노르웨이에서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런, 또는 소송까지 갈 수 있는-작가는 실제로 삼촌에게 고소를 당했지만- 위험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크나우스하다'=어떤 일을 세세히 다 기억하다, 나의 투쟁을 읽었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된 게 아닐까.
나는 이 책이 다른 서평처럼 '멈출 수가 없다' 정도로 강렬하진 않았다. 그만 읽으려면 얼마든지 그만 둘 수 있었고, 이 책 어디에서도 어떤 의미 있는 말을 한다던가, 이후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이 예상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서 그만 읽든 상관없는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 충격적일 만큼 화제가 된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다 말할 수 없고, 늘 자기 안에서 삭히고, 혼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고, 도덕적으로 옳지 않는 생각이 이따금씩 들 때면 난 쓰레기인가 하며 자학하고, 그런 말들은 (당연하게도) 꺼내지 않으며 살아왔는데 이 작가는 그런 말들까지 다 까발렸으니까. 그래서 내 생각에 '크나우스하다' 라는 말은 단지 '세세히 기억하다' 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나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 할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아니, 부디 그런 의미가 되길 바란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솔직해 지는 것. 이건 누구에게 미룰 것 없이 자신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허세를 부리고 센 척, 강한 척, 괜찮은 척, 잘 사는 척을 하며 속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는데 어린아이 땐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부모님이든 친구에게든 다 말하고 다니지 않았나? 그래서 그 때의 친구들은 정말 오래 가지만 다 커서 사귄 친구는 오래가기 어렵 듯이..(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 천국은 어린아이의 것이다' 라는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