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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 ㅣ 서울역사강좌 11
서울역사편찬원 지음 / 서울책방 / 2021년 2월
평점 :
조선시대 한양에서 집 구하기는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마저, 자식들에게 한양 떠나지 마라고 할만큼 한양 중심은 지금 서울 중심만큼이었는데, 주택난은 어땠을까?
모두 자가 소유자였을까?
서울시 산하 기관 중에 “서울역사편찬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역사강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집”을 주제로 강좌를 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강좌의 강연자들의 글들을 따로 책으로 묶어 내었는데, ‘역사’관련 기관인만큼, “조선시대의 집”이 주제 또는 소재인 책입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집”뿐만 아니라, ‘주거공간 인테리어’, ‘집안 살림의 큰 축이었던 노비의 일상생활’ ‘집에서 했던 각종 관혼상제’, ‘집에서 했던 풍류생활’ 등등도 다루는데,
제일 흥미로왔던 부분은 이 책의 전반부에 있던,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의 집 구하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한양 사람들은 다 자기 집이 있었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의 제2강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의 집 소유하기와 구하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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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알게된 것들 몇 가지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개국기를 지나 15세기 들어 한성부의 땅 부족 현상이 시작되자(한성부 거주민 증가, 왕실 구성원 증가 등등으로) 15세 후반 경국대전에 서인부터 1~9품 관료 및 대군 및 공주 등이 차지할 수 있는 (주택)대지 규모가 제한됨.
관리가 아닌 일반 백성의 경우 (주택)대지 최대규모는 85평 정도. 대군 및 공주의 경우는 1280평 정도로 제한됨(1280평은 현재 한남동 등에 있는 고급주택 대지면적과 유사하다함)
2) 조선시대에도 현대의 공인중개사 같이 살 집을 찾고 거래를 도와주고, 수수료를 받아 생계를 꾸려가는 직업이 있었음. 이들의 이름은 ‘가쾌’ 또는 ‘집주름’이라 함
3) 관직생활을 위해 한양으로 이주한 지방출신 양반들에게, 한양에서 집구하기는 쉽지 않았음. 특히 17세기 이후 군제의 변화로 지방의 군병들이 대거 한양으로 옮겨와 수도 한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살 집도 부족해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았음.
4) 지방에서 한양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전셋집을 구하거나 도성 바깥 또는 현재의 경기도 광주 등 지금 표현으로 서울밖 수도권에 거주하며 장거리 출퇴근 등을 하기도 함.
한성부에서 주택을 매입하지 못한 이들은, 관사(관공서)나 남의 집 빈터, 양반집 행랑을 빌려 임시 거처로 이용할 정도였음. 양반집 행랑에 임시로 머물던 군병들이 그 양반집 부인과 눈맞아 간통하는 사건이 벌어져, 정조 임금 시절에 양반집 행랑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함
5)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에서 즐기는 대표적 취미 생활 또는 풍류생활은, 매화 등 분재 또는 분경같은 화초 가꾸기 또는 감상하기였음. 그래서 시장에도 화분가게들이 있었다고 함(조선시대 사극에 화분가게가 나온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음)
한 때는 중국에 갔던 사신이 귀국하면서 수선화 알뿌리를 사오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는데, 수선화 재배가 지나치게 유행하자 수선화 국내 반입을 법으로 금할 정도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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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화초 감상부분에 있는 이 구절을 기억해볼만 했습니다.
“좋은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좋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라”
앞 부분은 상식적인 말인데, 뒷 부분이 생각을 깊이 해보게 하는 말일 듯합니다.
중국 북송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소옹’이라는 사람의 시문집 <이천격양집>의 ‘안락와중음(安樂窩中吟, 편안하고 즐거운 작은 집에서 시를 읆고 산다) 제7수에 담긴 구절이라고 합니다.
제11수에도 같은 뜻의 구절 “술 마시되 만취하게 되지는 말것이며, 꽃 구경하되 만개한 모습은 절대 보지 말아야지”가 있다고 합니다.
꽃이 활짝 피었다는 것, 만개했다는 것은 곧, 낙화를 암시하는 것이니, 이같은 사물의 이치를 주의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완성이나 최고, 절정의 단계보다는, 그 단계에 이르기 전의 과정과 조금씩 성숙해가는 단계, 조금씩 발전해가는 과정과 단계가 갖는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