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 - 고난과 구원의 도시, 빛과 어둠의 도시
W. 브루스 링컨 지음, 허승철 옮김 / 삼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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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배울 때, 특히 러시아편에서 항상 나오는 '표트르 대제'가 핀란드만의 습지같은 곳에 신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한 1700년대 초부터
볼세비키 혁명을 거쳐 1918년에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다시 소련이 해체되는 1980년대말까지, 그래서 1991년에 주민투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는 근 300년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형성과 그 도시에서 만들어진 엄청난 건물들과 역사, 문화, 사람들을 다룬 책이었습니다.

러시아 역사에 대해 조금밖에 몰랐기에, 이 책은 표트르 대제가 추진한 근대화 또는 유럽화와 그 후 러시아 및 소련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책같습니다.

그래서 붙인 포스트잇이 여태 어떤 책보다도 많아졌습니다.

러시아가 동쪽으로 갈 것인가, 서쪽으로 갈 것인가에서, 서쪽으로 갈 것을 선택했던 표트르 대제.
그의 재위기간에 시작해, 그 후 안나 여제, 엘리제베타 여제, 예카테리나 여제, 그후 다시 니콜라이 1세와 2세의 재위 기간을 거치며,
계속 개발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개발사도 흥미진지하며,
그 과정에서 이미 근대화된 유럽과 달리 중세사회의 특징인 종교(정교회)에 지배되고 신분에 지배된 사회에서 조금씩 러시아를 근대화시키는 실험이자 시도가 적용되어
광활한 러시아의 그 어떤 지역과도 다른 유럽의 사상과 문화, 기술이 도입되어 변화한 상트페트르부르크의 모습에 감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저자는 그러한 도시의 발전속에서 빈부격차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사회적, 계층적 극과 극의 모습도 잘 전달해주었습니다.
또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되고 근대화된 이 도시에서 러시아 혁명의 기운이 어떻게 싹트고 조직화되었는지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1941년부터 1944년까지의 나치의 레닌그라드 봉쇄 900여일 동안, 도시를 지켜낸 레닌그라드 시민들의 생존투쟁은 러시아인들에게 크나큰 자부심을 심어주고도 남았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또 이 책 덕분에, 19세 중반이후 20세기 중반까지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들과 작가들을 포함한 예술가들의 모습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모스크바는 아니더라도, 북유럽을 여행한다면 핀란드와 접경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꼭 가보고 싶어졌고,
그 때 이 책을 꼭 가져가야겠습니다. 미술관이나 전시회 감상할 때도 그렇거니와 도시를 산책할 때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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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일터에서의 사고와 죽음, 그에 맞선 싸움의 기록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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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 "일터에서의 사고와 질병, 그에 맞서온 이들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직업,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각 사례를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온 분들이 찬찬히 소개해줍니다.

딱 두 달전 녹색병원과 인의협 역사의 주역중 한 분이신 양길승 선생님을 뵙기로 한 날이 있었는데,
한 권 선물해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사)일과 건강'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쓰신 책입니다.

마트 노동자
조선소 노동자
학교 또는 연구소 실험실의 연구자
간호사
소방관
택시운전사
요양보호사
카지노 딜러 노동자
발전소 정비 노동자
가축 위생 방역사
농약 사용 농민
국립공원 레인저
네일 아티스트
환경미화원
등등

"감춰져 있던 고통에 이름이 생기면...일의 위험을 줄일 방법을 의논하게 된다....대부분은 사회가 이름을 불러주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지난 20년동안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사람들이 붙여온 고통의 이름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고마운 분들이 쓰신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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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인권운동가 박래군의 한국현대사 인권기행 2
박래군 지음 / 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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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초에 나온 신간인데, 저자가 쓴 인권기행 1이 2020년 5월에 나왔으니 그로부터 1년 10개월동안 8개의 지역 또는 사건 또는 인물을 찾아 나선 기행문이자 기록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좋았습니다. 독서하는 내내 참 좋았습니다. 1개 지역을 마무리하면, 인터넷에서 그 지역 지도를 찾아 다시 확인해보니 직접 돌아보는 것 같아서 생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더 좋았던 것은,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미처 몰랐던 것들, 특히나 가까이 있었거나 또는 들러봤던 곳들에 깃든 사건, 사람, 사연을 왜 그 때 몰랐지, 왜 여태 몰랐을까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들게 해줍니다.
아니, 아 이제라도 알게되어 다행이고, 다음에 또 그 지역을 가게 되면 꼭 찾아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최초의 소수자 인권운동단체이자 인권운동이었던 형평사 운동은 고등학교 시절인가 얼핏 시험공부하면서 스치듯 들었던 백정 해방 운동일뿐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좀더 알게 된 점, 특히 인권과 평등한 대우를 선각하고 지역 사람들의 배척을 묵묵히 견디어내신 강상호 선생이라는 분을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숙연하기도 해졌습니다. 경남 진주에 가면 꼭 이 분의 묘소를 가보려 합니다. 그리고 내년이 형평사 창립 100주년이라는데, 우리나라 모든 인권단체들이 힘을 합쳐 기념운동을 전개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대로 아는게 적었던, 이소선 어머님의 인권운동가 노동운동가로서의 삶도 좀더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이제 전태일 기념관을 가면 전태일 열사뿐만 아니라 이소선 인권・노동운동가에 대해서도 더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을 다룬 부분도 좋았습니다. 충청, 전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운동이 동학운동이고, 농민혁명도 여러 곳에서 진행되었다고 얼핏 알고 있는데, 속리산이나 법주사 여행지로만 접한 충북 보은도 그 주요한 곳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전주에 가도 전주 한옥마을 등만 둘러볼 뿐이었지, 일본으로 반출되어 해부학이나 우생학 교재로 악용되다 돌아온 무명의 농민장군의 유해를 모신 ‘녹두관’이 있는 줄도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충북 보은과 전주를 가면 근대적 인권사상, 아니 서구의 근대적 인권사상보다 더 뛰어날만큼의 동학과 동학농민운동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이들을 죽인 천주교 박해사건의 현장들도 더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서산 해미읍성은 아직 못 가보았는데, 언제 한 번 가면,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수많은 천주교 신자, 조선 후기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신앙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선배들이 있었다는 점에 숙연해졌습니다.

자전거타고 동두천 소요산 역까지 90여킬로를 달려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 있던 미군 위안부 ‘기지촌’ 지역을 둘러볼 생각을 왜 그 때는 못했지 싶었습니다. 미군 위안부 ‘기지촌’ 운영의 실질적 책임자인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한 재판이 현재 진행중이고, 1심에서 정부의 인권침해가 인정되고, 2심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정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었다는 점도 알게되어 기뻤습니다. 대법원 판결도 그러기를 기대하면서 동두천 미군 기지촌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외에도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터 이야기,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터 이야기, 광주대단지 사건(성남민권운동) 현장 이야기 등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또 좋았던 이유는, 슬픔에 그치지 않고 희망의 역사를 느낄 수 있어서였습니다.

책의 제목은 ‘상처’를, 그리고 부제에서도 ‘역사’라는 단어가 있으니, 마음이 아픈 사건, 슬픈 사건, 답답한 역사일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8개의 지역, 사건에서 인물들이 더 다가왔습니다. 인권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더 좋게 바꾸기 위해 움직인 사람 또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답답하지 않았고, 한숨보다는 감동과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유익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과 책을 읽는 중 느낀 저의 감정이 비슷해서 좋았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있는 저자의 후기에 적힌 다음 문장들을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언제고 뒤돌아보면 잊고 있었던 사건과 사람들이 애써 만들어 놓은 길 위에 (내가)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그 사람들을 기억하자는 이 책이 오늘의 불의와 차별에 문제를 느끼고 저항해가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을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진짜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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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다시 집을 생각하다 서울역사강좌 11
서울역사편찬원 지음 / 서울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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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에서 집 구하기는 어땠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마저, 자식들에게 한양 떠나지 마라고 할만큼 한양 중심은 지금 서울 중심만큼이었는데, 주택난은 어땠을까?
모두 자가 소유자였을까?
서울시 산하 기관 중에 “서울역사편찬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역사강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데, “집”을 주제로 강좌를 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강좌의 강연자들의 글들을 따로 책으로 묶어 내었는데, ‘역사’관련 기관인만큼, “조선시대의 집”이 주제 또는 소재인 책입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 “집”뿐만 아니라, ‘주거공간 인테리어’, ‘집안 살림의 큰 축이었던 노비의 일상생활’ ‘집에서 했던 각종 관혼상제’, ‘집에서 했던 풍류생활’ 등등도 다루는데,
제일 흥미로왔던 부분은 이 책의 전반부에 있던, 조선시대 한양사람들의 집 구하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한양 사람들은 다 자기 집이 있었나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의 제2강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의 집 소유하기와 구하기”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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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알게된 것들 몇 가지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1) 개국기를 지나 15세기 들어 한성부의 땅 부족 현상이 시작되자(한성부 거주민 증가, 왕실 구성원 증가 등등으로) 15세 후반 경국대전에 서인부터 1~9품 관료 및 대군 및 공주 등이 차지할 수 있는 (주택)대지 규모가 제한됨.
관리가 아닌 일반 백성의 경우 (주택)대지 최대규모는 85평 정도. 대군 및 공주의 경우는 1280평 정도로 제한됨(1280평은 현재 한남동 등에 있는 고급주택 대지면적과 유사하다함)
2) 조선시대에도 현대의 공인중개사 같이 살 집을 찾고 거래를 도와주고, 수수료를 받아 생계를 꾸려가는 직업이 있었음. 이들의 이름은 ‘가쾌’ 또는 ‘집주름’이라 함
3) 관직생활을 위해 한양으로 이주한 지방출신 양반들에게, 한양에서 집구하기는 쉽지 않았음. 특히 17세기 이후 군제의 변화로 지방의 군병들이 대거 한양으로 옮겨와 수도 한성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 사람들이 살 집도 부족해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았음.
4) 지방에서 한양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전셋집을 구하거나 도성 바깥 또는 현재의 경기도 광주 등 지금 표현으로 서울밖 수도권에 거주하며 장거리 출퇴근 등을 하기도 함.
한성부에서 주택을 매입하지 못한 이들은, 관사(관공서)나 남의 집 빈터, 양반집 행랑을 빌려 임시 거처로 이용할 정도였음. 양반집 행랑에 임시로 머물던 군병들이 그 양반집 부인과 눈맞아 간통하는 사건이 벌어져, 정조 임금 시절에 양반집 행랑에 거주하는 것을 금지하기도 함
5) 조선시대 양반가의 집에서 즐기는 대표적 취미 생활 또는 풍류생활은, 매화 등 분재 또는 분경같은 화초 가꾸기 또는 감상하기였음. 그래서 시장에도 화분가게들이 있었다고 함(조선시대 사극에 화분가게가 나온 적이 있는지 궁금해졌음)
한 때는 중국에 갔던 사신이 귀국하면서 수선화 알뿌리를 사오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는데, 수선화 재배가 지나치게 유행하자 수선화 국내 반입을 법으로 금할 정도였다고 함
____________________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화초 감상부분에 있는 이 구절을 기억해볼만 했습니다.
“좋은 술은 취하도록 마시지 말고, 좋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라”
앞 부분은 상식적인 말인데, 뒷 부분이 생각을 깊이 해보게 하는 말일 듯합니다.
중국 북송대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소옹’이라는 사람의 시문집 <이천격양집>의 ‘안락와중음(安樂窩中吟, 편안하고 즐거운 작은 집에서 시를 읆고 산다) 제7수에 담긴 구절이라고 합니다.
제11수에도 같은 뜻의 구절 “술 마시되 만취하게 되지는 말것이며, 꽃 구경하되 만개한 모습은 절대 보지 말아야지”가 있다고 합니다.
꽃이 활짝 피었다는 것, 만개했다는 것은 곧, 낙화를 암시하는 것이니, 이같은 사물의 이치를 주의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완성이나 최고, 절정의 단계보다는, 그 단계에 이르기 전의 과정과 조금씩 성숙해가는 단계, 조금씩 발전해가는 과정과 단계가 갖는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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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
김명희 지음 / 선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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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박사께서 두세달 전 번역출간한, 버나드 크릭의 <정치를 옹호함>을 지난 주에 읽었는데, 원저자인 크릭이, 정치의 요체인 설득과 조정의 대표자로 링컨을 여러 차례 지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태 링컨 전기나 평전을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어서, 서울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는 이 책을 보게 되었지요.
그런데 의외로 미국사람이 쓰고 우리 말로 번역된 평전이 서울도서관에 별로 없었습니다.
반면 전문연구자나 전문번역가도 아닌 듯한, 미국 거주 한국인이 직접 쓴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만, 링컨 그 인물 자체에 대해 다룬 부분에 비해, 미국의 남북전쟁 전개과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책이라, 한편으로 아쉽기도 했습니다.(물론 그 덕에 남북전쟁에 대해 잘 알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도서관에서 다른 책도 구해 둔 상태입니다.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느낀 점들이 있었습니다.
~~~
그의 소신이기도 하고 그의 지지자들도 원했던 노예해방선언을,
대통령에 취임한 1861년 3월 바로 그 때에 곧바로 하지 않고,
1861년 4월에 개시된 남북전쟁이 3년째 접어든 1863년 연초에 이르러서야 선언한 이유는 뭘까.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거나 최소화해보려는 고민이 링컨을 위대하게 하지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연방을 유지하고, 남북으로 분단되지않게 한 것도 링컨의 이런 면모때문이구요.
~~~~~~
또한, 보통 내전을 겪은 나라라면, 그 후유증이 심할텐데, 1861~1864년 미국의 내전, 남북전쟁의 후유증은 상대적으로 적지않았을까 싶습니다.
남북군의 군사, 정치 지도자들의 노력덕에,
상호간의 약탈과 민간인 학살 등 잔혹한 행위를 적게 한 듯 하거든요.
그 점에서, 비교가 쉽지는 않겠으나, 우리 민족의 내전인 한국전쟁기 상호 약탈이나 학살은, 정치 군사 지도자들의 지휘 또는 방조탓에 체계적이고 심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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