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들의 세계 ㅣ 트리플 15
이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1월
평점 :
영혼 결혼식하면 음울하거나 비극적인 상황을 떠올려요. 게임하다 죽은 게임 마니아와 클로짓 게이가 영혼 결혼식으로 부부가 된 귀신 이야기를 비롯해 기발한 소재로 엮어낸 새로운 차원의 세계 이야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소설에서 게임 때문에 죽었던 고양미는 이승을 떠난 지 3년이 지나 난데없이 살아있는 가족들이 그녀와 낯선 영혼의 영혼 결혼식을 했다는 통보를 받아요. 영혼 결혼식을 한 상대 영혼은 천주안이라는 남자로 가족조차 게이란걸 몰랐어요. 주안은 애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고 양미의 부추김에 그를 보러 갑니다. 새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의 애인은 혼자 술 취해 쓰러져 있었어요.
산 사람인 애인은 언젠가는 결국 천주안을 잊을 것이고 천주안은 그 하나하나의 과정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게 되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슬픈 일은 아니기를. 마지막에는 기어이 잊혔음을 기뻐하며 사라질 수 있게 되기를 p. 30

가장 여운이 오래 남은 이야기는 마음소라예요. 다른 사람에게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의 일본 영화 사토라레를 연상시키기도 했어요. 마음소라를 주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선택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점이 불특정 다수에게 들리는 것보다는 좀더 안전한 느낌이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도일로부터 받은 마음소라를 귀에 대자 그의 마음 소리가 들려요. 그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죠. 처음에는 마음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 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진실하게 자신을 좋아하는 지 느끼고 그와 연인이 되었어요.
누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것을 부어준 듯 가슴이 묵직하고 발이 저절로 동동 굴러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때문에 나는 그 으쓱한 기분, 붕붕 뜨는 느낌을 사랑이라고 섣불리 믿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최초에 얻었던 깨달음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큰 사랑을 되갚을 걱정 없이 받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얼마나 나를 값어치 있게 만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바로 그것이 나를, 그리고 도일을 망쳐놓았다. p. 53

실제로 오랜 연인 사이가 결혼까지 가지 못하거나 결혼 직후 파경에 이른 경우를 가끔 봤어요. 둘 사이가 무척 좋아보였는데 어째서 해피엔딩이 아닐까 의문이었어요. 남들이 알 수 없는 둘 사이의 문제가 있었겠지요. 스물한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꼬박 7년간. 도일과 사랑했지만 둘 사이는 일순간에 깨어집니다. 그의 마음소라에서 들린 본심 때문이었어요.
둘이 헤어진 후 각자 다른 상대와 결혼하고 도일의 아내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와요. 이 반전이 긴장감을 높이고 끝까지 집중하게 했어요. 사랑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서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변화는 때론 씁쓸하기도 하네요. .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피터팬을 봤을 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피터팬보다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는 해적선장 후크보다 더 인상에 남았던 건 팅커벨이었어요. 팅커벨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요정과 반려동물처럼 함께 살 수 있다면 멋진 일이겠지요.
고조모에게서 요정을 상속받은 남자는 요정을 절대 돈으로 바꾸지 말라는 당부를 듣지만 친구의 유혹에 요정을 번식시키는 일과 관련된 가상화폐 페어리코인 사업을 시작해요. 자신이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위로해주었던 요정을 가족이 아니라 사고파는 물건처럼 여기게 되었고 그런 자신을 자각해요.
반려동물은 사고파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우리 집 요정의 진짜 매력은 예쁘고 안 죽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p.101

소재는 판타지같지만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에요. 영원할 것같은 사랑도 끝이 있고 평소에는 가족이라고 하지만 돈 앞에서 이기적인 위선자가 되기도 해요. 짧지만 여러가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집이에요.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