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박철화 옮김 / 문학세계사 / 2022년 12월
평점 :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이끌고 놀라운 반전을 가져왔던 작가 아멜리 노통브예요 최근에는 신작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반가운 재출간작이라 기대되었어요

책의 시작 첫 문장에서 "적의 화장법"이라는 제목에 대한 이유가 나와요.
화장을 하듯 남자는 두 손으로 머리칼을 가지런히 다듬었다. 예술의 규칙에 따라 희생자와 마주하려면 제대로 모습부터 갖춰야 한다. p.7

혼자 여행을 떠나 버스, 기차, 비행기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끔 옆좌석에 앉은 사람이 신경쓰이기도 하죠. 제롬 앙귀스트는 비행기 출발이 늦어져 방문한 공항 대기실에서 불편한 상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처음보는 남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자신의 이름이 텍스토르라 말하고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고백해요. 제롬은 전혀 관심이 없는 얘기에 억지로 달라붙는 그가 혐오스러웠어요.
아마도 적은 당신의 외부에 따로 존재하진 않을 겁니다. 당신은 그 적이 지금 당신 곁에 앉아 있다고 여기겠지만, 아마도 그는 당신의 독서를 방해하면서 당신의 내면에, 머리와 뱃속에 이미 들어가 있을 겁니다. p.31

처음에는 귀찮은 정도였지만 텍스토르가 하는 이야기는 점점 위험한 수위에 이릅니다. 어린시절 자신이 싫어하던 프랑크가 죽기를 기도하여 그가 갑자기 심장 발작으로 죽었다는 것이나 고양이 밥을 먹었다는 건 대수롭지 않았죠.
제롬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건 텍스토르가 한 여인을 성폭행했다는 말을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텍스토르는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자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신이 강간범이라는 걸 밝혔다고 해요.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이 당신의 몫이 되길 바라지만 난 그 일에 끼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당신이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지길 원해요. p.70

텍스토르는 그녀가 끔찍한 기억을 극복하고 행복을 찾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른 범죄를 저질렀어요. 거기까지 들은 제롬은 더이상 참지 못하죠.
이 소설의 반전은 제롬이 경찰을 부른 후 발생합니다. 되돌아보면 진실은 이미 밝혀져 있었어요. 여행지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갈 낯선 사람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요. 둘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인 대화 내용이 주를 이뤄요. 아멜리 노통브는 텍스토르가 되어 독자의 신경을 긁고 짜증나게 하고 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소설을 읽고난 후 나는 제롬의 편일까요 아니면 텍스토르? 역시 소설의 분량에 비해 많은 생각을 가져다주는 아멜리 노통브입니다.
* 이 리뷰는 네이버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