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 세계사 : 自然史 혁명
이종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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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에 깃든 열대 자연사.


우리나라는 수도 서울에 정치, 경제, 문화의 기능이 거의 집중되어 있습니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상당히 커요. [훔볼트 세계사]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자연사를 인류사와 연결하여 융합적 세계관을 펼치는 내용이라니 기대되었습니다. 


이 글의 서문은 영문으로도 써있습니다. 지식이나 살아있는 지혜, 학문의 융합적 성격에 관한 한 훔볼트만한 인물이 없다며 칭송해요. 훔볼트는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에 아메리카, 유럽 등을 여행하였고 이 무렵부터 열대 해양무역 네트워크가 전 지구적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서구는 열대 자연사에사 경제적 효용성을 발견했고 식민화를 가속시키고 낭만적 감성도 충족시키려 했습니다. 


저자는 훔볼트가 아메리카 탐험 시기의 조선에 대해서도 언급합니다. 조선의 홍어 장수 문순득이 표류에 휩쓸려 류큐를 거쳐 여송까지 떠내려갔다가 약 3년만에 고향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문순득은 유배온 실학자 정약전과 자신의 경험에 대해 대화를 나눴어요. 외국인의 용모와 해외 무역에 대해 처음으로 눈을 뜬 겁니다. 


정약전은 표해시말에 문순득의 체험을 기록했어요. 실학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조선이 세계에 대해 배울 기회를 놓친것이 안타깝네요. 반면 훔볼트는 귀족 가문으로 광업 관리가 되어 18세기 후반부터 독일 귀족들이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붐에 합류합니다. p.56 


에스파냐 하층 계급인 코르테스가 수백 명의 부대로 수만 명의 아즈텍 군대를 이긴 건 천연두의 창궐때문입니다. 자연사에서 천연두를 비롯한 구세계의 미생물들이 신세계에 유입되어 인구 급감을 일으켰습니다.  코르테스의 정복 이후 멕시코 토착 원주민은 60년 만에 95%가 사라졌어요.


18세기 아프리카에서 카르브해의 생도맹그로 끌려온 노예는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미국 남부 전체의 흑인 숫자와 비슷했어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노예들에 의해 유럽이 지탱되는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콩고-아이티 노예혁명은 노예들이 주역이 되었단 점에서 세계사적 의미가 큽니다. 17세기 콩고는 왕족 자녀들을 포르투갈에 유학 보낼 정도로 유럽과 교류하고 있었어요. 조선 사대부들의 '직방외기'에도 콩고가 의리있고 천주교를 신봉하는 콩고에 대한 언급이 있을 정도입니다. 노예들의 신앙인 부두교가 카톨릭에 탄압받자 인종차별을 부르짖으며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난 생도맹그의 항쟁이 그들의 혁명보다 2년 앞선 프랑스혁명에도 영향을 줬을거라 해요.  p.139


훔볼트는 자연과 예술을 밀접하게 보고 자연사와 인류사도 관련 깊다 합니다. 열대 자연사 탐험에 기초한 훔볼트과학은 정확한 측정, 실용적 지도 제작, 예술적 감성을 융합하여 작용해요. p.249


훔볼트과학과 낭만주의의 공명은 광물, 설탕, 커피, 담배, 차 등을 발명시켰고 근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음악, 미술에도 반향을 일으킨 훔볼트에 의한 근대 공간의 발명이 인류사에 지금까지 끼친 영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합니다. 훔볼트의 생애에 대해서도 말하고 당시의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인지도 알려주니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 이 리뷰는 출판사 자체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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