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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는 것 같다 ㅣ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그리고 눈물이 왼뺨과 오른뺨의 길이를 재듯,
우리는 서로를 생각한다
시인들이 쓴 에세이집. '아버지'를 주제로 한 다양한 시들을 함께 엮고, 사이사이 시인들의 에세이를 넣었다. 신용목 시인님과 안희연 시인님. 내가 좋아하는 두 시인님들이 쓰신 에세이집인데, 내가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읽는 내내 많이 울었다. 실려 있는 시들도, 에세이도 모두 좋았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인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버지를 만난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속 시간만 흐른다면, 결국엔, 내가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마저도 영영 잊어버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들을 하니 문득 슬퍼졌다.
인상 깊었던 구절들
"아빠, 사람의 영혼은 무지갯빛을 가졌대"
하고 말하면
"그러면 사람들의 몸은 흠뻑 젖었겠구나"
하고 답하는.
이런 류의 다정함이 우리 사이에도 가능했을까? 우리의 안부는 늘 생활에 묶여 있거나 생명에 매달려 있었던 것 같다.
무지개를 띄우기 위해 비가 오지만, 무지개를 바라보다고 멎지는 않는.
더는 무지개가 설 수 없는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는 서로의 손을 더듬어 젖은 안부를 물었던 것 같다.
p22
그래서 오늘은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말 속에 아버지의 소년을 가둬놓았고
아버지의 연애를 가둬놓았고,
날개를 갖지 못한 새와 노래하는 돌멩이와 잔디 위를 구르던 여름 동산의 몸으로 서둘러 맞이했던 겨울,
그 추위를 가둬놓았다
아버지, 아버지 부를 때마다 아버지가 아버지 속에 갇히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p26
오늘은 아빠의 가장 여리디여린 부분을 생각해보기로 한다. 아빠도 복숭아 속살처럼 멍들기 쉬운 피부를 지닌 사람이니까 바람 불면 바람에 긁히고 꽃 피면 꽃잎에 쓸려 쓰라리기도 했을 테지.
p119
어린 나의 기억 속에는 한밤중 거실에서 아빠 사진을 앞에 두고 흐느끼는 엄마가 있고,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스며들던 빛이 있다.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갈 수도, 그렇다고 못 들은 척 다시 잠들 수도 없던 그때. 나를 가장 두렵게 한 것은 바로 그 빛, 빛이었다. 빛은 참혹한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었고, 어둠속에 안전히 숨어 있던 나를 기필코 찾아냈으며, 흉기를 든 강도처럼 나를 위협했다. 고통은 날마다 몸집을 불려갔다. 엄마는 산으로 바다로 밤낮없이 헤매었고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병실 침대에서 환자복을 입은 엄마를 끌어안고 꾸던 꿈, 그 서글픈 밤들이 살을 뚫고 핏줄을 뚫고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스미는 동안 내 키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p133
실려있는 시들 중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시를 한 편 옮겨 적겠다.
서울, 273 간선버스
신미나
비가 오니까
따뜻한 걸 먹을까
대학병원 회전문을 나선다
당신은 재가 떨어질 때까지
담배를 피우는 버릇이 있다
담배를 다 피우면
담뱃진이 물든 중지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는 했다
내년에 꽃 보러 오자
길바닥에 떨어진 버찌 열매를 밟으며
국수를 먹으러 간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앞서 가는 뒷목이 붉다
에세이집 제목인 '당신은 우는 것 같다'는 이 시의 구절에서 따온 게 분명하다.
당신은 우는 것 같다.
결국 이것 또한 추측이다. 당신의 딸인 나는, 당신의 유전자를 절반이나 나눠 받았으면서도, 당신이 우는지 울지 않는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당신은 우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 밖에, 생각만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