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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고전의 숲 두란노 머스트북 1
존 번연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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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나오는 이야기하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구운몽이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 속에서 이 가지는 기능은 아무래도 인생의 무상함을 독자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일 것일 것이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읽은 천로역정의 꿈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만화책으로 읽은 것까지 포함해서 이번에만 이 책을 세 번째 읽게 되는 지금에서야 말이다. 특히 이번에 두란노에서 나온 천로역정을 통해서 이러한 관점을 얻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글에서는 먼저 두란노에서 낸 천로역정이 어떠한 특징(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소개한 후, 꿈이라는 관점으로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후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어떻게 책이 재구성 되었는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천로역정을 지금까지 세 번이나 읽었다. 처음에는 만화책으로, 그 다음에는 책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두란노 머스트북에서 낸 것으로 읽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어렴풋한 아웃라인에 내게 선재해있다는 것을 감안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고전이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되어야 되는가?”에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이 어떠길래 나는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가? 첫 번째는 이 책의 가독성 때문이다. 전에 만화책이 아닌 책으로 천로역정을 읽었을 때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문장이 애매모호하거나 와닿지 않는 표현들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이 책은 이삼일 만에 다 읽게 되었을 정도로, 글이 술술 읽혔던 것 같다.

     또한 위에서 재구성이라는 단어를 썼듯이, 이 책은 기존의 천로역정에다가 독자들이 독서의 이정표로 삼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함께 포함시켰다. 이 것은 이 책이 가진 큰 매력이다. 특히 천로역정같은 경우에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과 장소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독서에 집중해 이야기에 파묻히다보면 자칫하다가 전체적인 맥락이 놓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각 챕터마다의 이동 노선과, 키워드들을 해쉬태그로 달아두어서 독자들이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그 이야기들을 미리 조망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준다.

     위에 설명한 것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포함된 삽화들이나 책의 전체적인 디자인 또한 현대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매력적이게 다가오게 하는 요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혹시 나처럼 예전에 천로역정을 읽었던 분들도 꼭 또 한 번 이 책으로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

 

     위에서 책의 전반적인 특징들을 이야기했으니 이제 여기서는 이 책을 읽고 느낀 포인트를 간략히 나눠보고자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조는 황무지를 걷고 있는 가 동굴에 들어가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하여, 잠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책의 이야기는 나의 꿈의 관계에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물론 깨어났다라는 표현이 224p에서도 등장하긴 하지만, 그 뒤로도 내가 꿈에서 보니라는 문장이 나오는 것으로보아 292p의 깨어남이 최종적인 깨어남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줄곧 꿈의 내용을 서술하던 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다 꿈이었다.”

  

  

“    가 꾼 꿈, 그 모든 것, 이 책의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 그 것은 다름 아닌 크리스쳔이 멸망의 도시에서 천성으로 향하는 힘겹고 치열한 여정이다(물론 소망도 함께 가지만). 이 힘겹고 치열한 이야기가 이렇게 꿈이었다고 하니, 우리는 허무해 해야하는가? 그러나 어떠한 독자도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고 허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러한가?

     나는 그 이유가 이 책이 우리에게 잠에서 깨어나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는 황무지를 거닐다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동굴에서 잠이 든다. , “는 황무지를 거닐다가 피곤해진 순례자이다. 그는 어디론가 가고 있던 자이다. 그러나 그는 잠시 그의 가던 길을 멈추고 그의 꿈, 즉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는 바로 우리에게 독자들을 연상시킨다. “는 이야기의 서술자이면서, “독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 모두 또한 결국 황무지를 거니는 순례자이면서, 또한 이 꿈과 같은 이야기를 읽고 있는 즉,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순례자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다시 길을 걸으라고, 꿈 속에서 크리스쳔이 그랬던 것처럼 천성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라고 격려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라고 속삭인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자여 이제는 잠에서, 꿈에서 깨어나 당신도 갈 차례입니다!라고 초대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순례자가 순례자에게 주는 편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모든 순례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크리스쳔들이 읽으면 좋겠고, 크리스쳔이 아니더라도, 길을 찾아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황무지를 거닐다가 피곤하여 지친 몸을 이끌고 쉴 곳을 찾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안전한 동굴이 될 것이며, 그 곳에서의 꿈이 그들을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다시 그들이 순례자임을 깨닫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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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학교 - 학교 밖에서 배우는 사랑 교육
김상훈.윤정희 지음 / 두란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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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 벚꽃이 필 무렵에, 분홍색 표지의 이 책이 내게로 왔다. 그러나 한동안 이 책을 읽지 못했다. 여러 가지 바쁜 일들 때문에 정신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 여유가 생겨 이 책을 펼치게 되자, 순식간에 읽어나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페이지 페이지마다가 내게 감동이었고, 도전이었다.

우리, 서로, 함께

 

 

   어떻게 이러한 가족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목사님이어도, 사모님이어도 어떻게 아이를 11명이나 입양해서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그 한 명 한 명을 온전히 주님의 사랑 안에서 품을 수 있을까? 물론 나는 아이들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교회학교 전도사로서 이 것이 무엇보다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에 내 안에는 이런 질문들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 단어, “우리” 그리고 “서로”와 “함께”와 같은 단어들이 왜 이 가족이 지금까지 있을 수 있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 그 누구도 가야하는지는 알면서도, 쉽게 가려고는 하지 않는 이 길. 이 길을 이 가족이 걸을 수 있는 비결에는 바로 이 단어들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낄 수 있는 것은,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시는 구나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지지해주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협력하고 있었다. 또한 부부는 그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이 되어주었다.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내어주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또한 아이들과 함께 하며, 서로가 같이 길을 걷는 것. 이 것이 이 가족을 지금까지 있게 한 그리고 앞으로도 있게 할 원동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특수한 가정환경 때문에 들리는 주변의 왜곡된 말들이 아이들에게 상처로 날아오게 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그렇기에 조심스럽다. 어찌보면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이 가족의 관계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어색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가족은 핏줄보다 진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책을 읽으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무엇보다 단단한, 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위에 세워진 이 가정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세워진 가족은 말씀과 기도로 언제나 함께 하였다. 주님과 동행하였다. 가족이 아침마다 큐티로 하루를 열고, 서로 나눔을 하며, 또 서로를 위해 기도 하는 그 모습. 그 곳이 곧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 곳이 곧 하늘나라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내게 들어 감동이 되었다. 또한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학업 보다 성경 말씀을 우선으로 키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가족은 이웃과 함께 하였다. 11명의 아이들을 다 키우기도 벅찰텐데, 여기서 더 나아가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이 가족의 모습에 내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부모님의 봉사하는 모습을 아이들이 배우고, 또 아이들이 나중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는 모습을 통해 가정이 좋은 학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가 영향을 주면서 함께 성장하는 모습이 내 마음에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는 길이,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

 

 

“주변에 많은 분들이 우리 가족의 삶을 기적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절대 기적이 아닙니다. 저는 그냥 삶이라고, 주님과 함께 길 위에서 걸어가는 삶이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p.248)

 

 

   많은 사람들이 삶이라는 여정 가운데 있다. 이 여정 가운데서 각자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 수많은 목표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 가운데는 장애물도 있을 것이고, 갈래길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를 때로는 당황스럽게 하고 넘어지게 만든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가족이 필요하다. 가족이 있다는 것, 이 것은 곧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걸음을 도와주고, 넘어진 누군가를 업어주면서 기어코 그 모든 길을 함께 걸어내는 삶. 그 모든 길 위의 시간들이 무엇보다 가족을 가족되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진정한 가족은 바로 주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 사신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세상의 아프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면서, 또한 그들을 가족으로 초청하는 삶. 주님과 함께 걷는 삶. 이 삶 속에서 주님은 가족과 함께하시며, 가족 가운데 있는 상처와 아픔을 모두 치유하시고, 그들이 있는 곳을 하늘 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대한민국의 모든, 함께 길을 이들에게, 가족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들의 입술에서 “우리가 가는 길이,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되게 하소서”라는 고백이 나오기를. 그래서 그들의 삶이 모두, 오늘의 이 가족처럼 기적과 같은 매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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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영성 - 내 마음의 주인 찾기
폴 트립 지음, 최요한 옮김 / 두란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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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영성.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놓으면 왠지 이 사이에 “vs”를 붙여야할 것 같은 충동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에겐 그랬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가 갈등의 구조 속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은 돈“과” 영성이다. 돈과 영성? 왠지 책 제목만 놓고 보면은 내용이 뻔해 보였다. 또 돈에 관한 여러 가지 “지침들”이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원어 제목인 “Redeeming Money”(Redeem은 “보완하다, 만회하다, 구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돈에 대한 나의 왜곡된 관점과 생각들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돈과 영성이 상반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돈이 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탄탄한 복음에 대한 이해 가운데 쓰여졌다는 것이었다. 즉 뚜렷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 아래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명확한 관점들 아래서 우리에게 돈은 무엇이며, 또 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관점들 속에서도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돈을 설명하는 책 속의 여러 문장들이다.

돈은 날마다 우리를 유혹하고, 거짓말을 한다(p.20)

돈은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화살표 역할을 한다.(p.99)

돈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계획을 망각하고 살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p.104)

돈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드러나게 하는 수단이다.(p.192)

 그렇다! 이렇게만 놓고 봤을 때는, 저자는 돈에 관해서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돈이 양면성을 띄는 이유가 결국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 누구냐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이 책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위의 문장들의 의미가 이해될 것이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돈도!

 

 

 

 우리가 재정 사용에서 잘못된 선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죄 때문이다. (P.200)

  그렇다. 이 책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가 돈의 노예처럼 되어버리는 이유는 우리 마음에 남아 있는 죄 때문에 라고 말이다. 즉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려 내 생각대로, 또 남들이 하는대로, 하나님 없이 돈을 쓰려고 하는 그 것이 곧 문제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 것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것을 내 맘대로 쓰는데 뭐가 어때서!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당신 마음대로 한다는 그 “당신의 마음”을 당신은 정녕 당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냐고 말이다. 왜 많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의 포로가 되고,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돈의 포로가 되는 것일까? 그 어떠한 사람도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처럼 그 누구도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쓴다고 하면서,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내가 벌었고, 그렇기에 내가 지금 나를 위해서만, 내맘대로 쓰는 돈은 우리를 결국 옭아매고 불행에 빠지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산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렇기에 이 책은 말한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해 손상된 “돈”을 회복시키고 구할 수 있는(Redeem) 근본적인 방법은, 예산 세우기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말한다. 본인도 돈의 유혹에 넘어졌던 적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같았지만 돈을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우리가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재정 문제를 해결해서 우리의 소망이 든든한 게 아니다. 우리의 소망이 든든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하나님이 우리 삶을 은혜로 덮으셨고, 그런 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우리를 용서하고, 바꾸시며, 우리에게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재물이나 다른 어떤 것에도 우리를 뺏기지 않으신다”p.171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오늘도 돈에 의해 소외되고, 어느새 삶의 목표가 돈이 되어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 마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되어야할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맘몬인가? 하나님인가? 라는 이분법적인 제시를 넘어서,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럴 때, 돈은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고, 무엇보다 “복음”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이 시대의 언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인상깊었던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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