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 주위에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편의점에 가서 우유 한 통 사온 이야기도 이 사람이 하면 뭔가 특별한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글을 쓴다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물론 말을 잘 하는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글이라는 것도 생각에서 나오는 것 이니

글쓰기 훈련만 잘 받는다면 머릿속에 있는 상념들이 손가락으로 자연스레

흘러나오지 않을까?


 

- 스티븐 킹

 

현존하는 미국작가 중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은 누구일까?

나는 스티븐 킹이라고 생각한다.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너무 유명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이 베스트 셀러 작가는 뱃속에 이야기 주머니를 따로 달고 태어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이다. 논문을 쓸 때 조차도 스릴러 같이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정말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그의 글들은 평균 타율을 유지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깊이에의 강요를 견디어 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소설을 펼쳐보면 어릴적 머리맡에서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현재 이 작가의 가장 큰 적은 다작(多作)이 아닐런지.


 

- 폴 오스터

 

스티븐 킹을 언급한 것은 또 다른 미국 작가인 폴 오스터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 역시 뛰어난 이야기꾼 중 한 명이다.


현존하는 작가 중 신간이 나올때마다 찾아보게 되는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폴 오스터이다.

폴 오스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달의 궁전>을 통해서이다. 다음에 읽은 <뉴욕3부작>으로 나는 오스터 빠돌이가 되어 ‘닥신사(닥치고 신간 사수)’ 가 되었다. 근래 들어 문학보다는 인문 사회과학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보니 그의 신간들을 놓치게 되었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놓친 것들을 다시 찾아서 읽어 보아야겠다.

요즘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놓고 한 수 가르치고자 하는 책들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도 많지만 요런 소설 나부랭이들이 주는 여운 또한 만만치가 않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1967년 봄에 그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이 문장은 언뜻 평범하면서도 의식의 관성을 거스르는 한 단어에서 방점이 찍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그와 처음으로 만났다’ 혹은 ‘보았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악수를 했다’는 표현은 낯선 느낌을 주어 미끄러져가는 의식에 제동을 걸어 왔다. 사실 이 문장은 그리 뛰어나거나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다음 문장을 쫓아가게 하는 힘을 실어준 문장이다. 첫 문장이 두번째 문장으로 이끌고 이어서 다음 페이지로 견인을 하는 식으로 달려가다보니 어느덧 1부가 끝나는 78페이지에 도착해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홀림이었다.

모름지기 구라를 칠려면 이렇게 쳐야 한다.

오직 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구라꾼의 미덕이요 자질이다.

역시 오스터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은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남은 페이지들을 넘기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시점과 화자가 조금씩 바뀌는 구조로 되어 있다. 1인칭으로 쓰여 있는 1부는 애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 이야기는 애덤이 나이가 들어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자서전 형식으로 쓴 자전적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이 2부에서 밝혀진다.

2부에서는 애덤의 원고를 읽은 친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미완성 원고를 남기고 죽은 애덤의 행적을 찾아가는 친구의 내용이 3부에서 이어진다.

 

애덤의 원고는 <봄>, <여름>, <가을> 3부로 구성이 되어있다.

소설가인 친구의 조언에 따라 각 부마다 시점을 바꾸어 가며 쓰면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노력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인 <보이지 않는>에 대해서는 95쪽에서 언급을 하고 있다.


“나는 나의 접근 방법이 틀렸음을 알았다. 나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나는 나 자신을 질식시켰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내가 찾고 있던 것을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트릴 필요가 있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 자신과 나의 주제(바로 나 자신) 사이에 약간의 공간을 두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2부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3인칭으로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되었고 이런 자그마한 시점 변화에 따른 거리 덕분에 나는 그 책을 끝낼 수가 있었다.”


 글을 쓰던 중 난관에 봉착한 애덤이 어려움을 토로하자 소설가인 친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 주는 내용이다. 애덤은 친구의 조언대로 2인칭으로 시점을 변화시켜 제2부(여름)를 완성하게 되고 제3부(가을)는 3인칭으로 쓰이게 된다.

 

설명하다보니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실재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으며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오히려 쉽게 읽히는 부분도 있다. 잦은 시점의 변화와 액자구성의 형식으로 인해 리듬이 끊길 것 같은데 그 간극이 비교적 촘촘하여 집중력과 기대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작품 또한 폴 오스터의 여타의 작품들 처럼 깊이 있는 심리 묘사와 섬세한 문체, 리얼리즘과 판타지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등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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