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전6권
나관중 지음, 정비석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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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장필무(張弼武)를 인견하실 때 전교하시기를 ‘장비(張飛)의 고함에 만군(萬軍)이 달아났다고 한 말은 정사(正史)에는 보이지 아니하는데 《삼국지연의(三國志衍義)》에 있다고 들었다.’ 하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지가 오래 되지 아니하여 소신은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말이 매우 많았다고 하였습니다.

— 《조선왕조실록》선조 3권, 석강에서 《근사록》을 강하고 기대승·윤근수 등이 역사를 공부하는 법을 논하다

 

“한글세대 독자들에게 맞는 문체와 서사를 갖춘 <삼국지>가 필요했다. 나는 이문열에게 ‘이 작업은 노후의 양식이 될 테니, 반드시 한번 해 보시오.’라고 권유했다.”

- <책-박맹호 자서전> / 박맹호 / 민음사 / 2012

 

“호머의 작품들을 연구하는 일을 기쁨으로 여겨라.

낮에는 읽고 밤에는 묵상하라.“ (포프)

 

 

 

어쨌든 끝까지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책이 있다.

삼국지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런지.

 

삼국지는 너무 유명한 책이라 설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어 좋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일단 엄청난 스케일 때문에 압도당하게 되고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하게 섞을 줄 아는 재담가의 능력에 탄복하게 된다.

 

호머의 <일리아드>, <오딧세이>가 오늘날까지도 상상력의 마르지 않는 샘으로서 서양문학계에 끊임없는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듯이 한자문화권에서는 삼국지가 그 위치에 서 있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정비석이 번역한 삼국지는 유비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를 굳이 감추지 않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답답할 정도로 인애와 자비로 다스리고자 하는 유비의 모습을 통해 민중들이 원하는 통치자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때문에 당연하게도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유비의 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신으로 추앙받는 관우나 삼라만상을 꿰뚫어 본다는 제갈공명조차도

유비의 성품에 머리를 숙이는 장면을 집어넣으면서까지 유비가 이상적인

군주임을 설득하고 있다.

 

정비석 번역은 한자체가 많아서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도 많다.

 

그러나 문맥으로 이해를 한다면 전체적인 흐름을 쫓아가는 데에 별 무리가 없다. 완전히 한글로 풀어 쓴 문장보다는 읽는 맛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별 불만이 없는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의 번역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원문을 크게 훼손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각자에게 읽기 편한 번역이면 그걸로 족하다고 본다.

 

내가 느낀 삼국지는 협잡, 음모, 배신, 위선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문장은 스케일이 큰 무협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삼국지의 문학적 완성도나 쾌감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먼저 읽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제시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이 책이 너무도 광범위하게 인용이 되고 변주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말해, 일단 읽어두면 어디 가서 쪽팔림 당하는 것을 면할 있는 수단이 된다는 말이다.

 

다만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게 평가하고 싶다.

특히 고대의 공성전(攻城戰)이나 전투장면, 전략 등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귀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의 상황을 정탐하기 위해 소수정예의 정찰부대를 파견하게 되는데 속도와 민첩성이 생명인 정찰부대에게 음식은 중요한 문제이다. 그들이 조리도구를 가지고 다닐 수는 없기에 주먹밥을 싸서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쌀이 주식인 문화에서는 밥을 짓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을 것이다. 밥을 짓기 위해서는 무거운 가마솥을 가지고 다녀야하고 땔감도 준비해야 한다. 군대를 먹이기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까? 거기다 말(馬)도 밥을 먹어야 한다. 한겨울에는 말들을 먹일 풀도 직접 준비해야 한다. 먼 길을 떠나는데 어디 음식만 필요하겠는가? 그러니 주력부대의 뒤를 이어 어마어마한 병참부대가 꼬리를 물고 다녔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삼국지를 읽으며 당시의 전쟁 장면이 대충이나마 머릿속으로 그려지게 된 것은 가장 값진 소득이다.

 

곰팡내 나는 캐캐묵은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1세기에도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시대적인 감성이 있다는 것인데 그건 다름 아닌 인간의 본성은 진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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