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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양장)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세상의 어두운 면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땅에서 조금 떠 있는 존재, 그의 이름은 헬렐 벤 샤하르 휴가 중인 악마.
악마의 이름에 '빛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헬렐이라니.
그가 눈여겨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소년 현정인.
정인은 중학생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위해 학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수학여행비 걱정에 여행을 포기하는 소년, 할머니와 둘이서 방 한칸의 집에서 살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습관처럼 폐지를 줍는 소년.
둘의 만남은 정인을 어디로 데려갈까?
고양이의 모습이었다가 금색 눈을 가진 남자가 되었다가 하는 헬렐은 자신을 향한 아이들의 돌팔매에 소심한 복수를 하는 루시퍼.
와이파이 조차 되지 않는 소년의 집에 와이파이를 끌어오고 오르톨랑이란 멧새요리를 설명하며 네가 '만약에'라고 상상만 한다면 뭐든 이루워 줄 수 있다는 할렐.
과연 할렐이 정인의 옆에서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에 내가 없었으면 할머니는 더 행복했을까?"라고 묻는 정인에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거 인생 망치는 주문이야."라고 말하는 할머니.
"사람은 왜 그래? 왜 그냥 있는 그대로를 못봐?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이다. 네 이름자에도 쓴 사람 인(人)말이야. 작대기가 두 개잖아. 이런 상상, 저런 상상, 좋은 상상, 나쁜 상상. 상상은 해 볼 수 있지, 사람이니까. 근데 상상을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
클로버 책 62쪽
상상이 나를 잡아 먹지 못하도록 나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인 듯하여 위로가 된다.
"난 네 운명을 바꿔 줄 수 있다니까."라며 정인에게 거래를 신청하는 할렐에게 재치있는 대답으로 응대하는 정인, 할렐이 '만약에'라며 묻는 여러번의 질문에 정인이 한 대답 중
"선택. 내가 뭔가를 고르는 거요."라는 대답은 그 동안의 정인의 삶의 여러가지를 말해 준다.
정인의 마음 속을 금빛 눈을 반짝이며 휘젓는 할렐.
급하게 철들며 포기해야 했을 욕심들이 소년 안에서 뭉근하게 숙성되었기에, 너무 일찍 밥값의 무게를 알아 버린 여린 눈에 비친 세상은 소년의 영혼에 풍미를 더해 주었고,소년이 곱씹어 삼킨 외로움은 근사한 고명이 되었다.
클로버 88쪽
할렐은 이 유약한 영혼의 맛을 오르톨랑이라는 요리를 생각하며 소년의 옆에서 머무르고 있다.
소년의 고통이 아픔이 멧새의 그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몸부림인 듯 하다.
소년의 이야기를 읽는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악마의 속삭임에 자포자기로 넘어 갈까봐.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는 밤 소년은 악마의 그림자에게 자신을 숨겨 달라고 한다. 결국 레테의 강을 건너고 상상하는 모든 게 이루어지는 곳에 당도하는 정인.
나이키, 비행기, 재아, 할머니와의 만찬.... 문을 열기만 하면 준비되어 있는 것들
상상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 곳에서 정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잃어버리기 싫어. 내 마음대로 안 풀린다고 걷어차 버리고 싶지 않아. 기억도, 삶도, 세상도.
책 표지에는 '모든 상상이 이루어지는 곳에 온 걸 환영해, 소년'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상상보다는 현실에 발 딪고 있는 소년의 삶의 무게를 악마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악마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살았고 또 얼마나 박식한지 자랑하며 때로는 정인에게 약간의 친절을 베풀며 끊임없이 유혹한다. 덕분에 자신의 초라함이 더 대비되고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이 더 궁색하다.
나혜림 작가는 음식을 통해, 예술을 통해 상황을 읽혀주고 더 깊은 생각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마침내 (헤어질 결심 이후 이 단어가 좋아졌다 ㅋ ㅋ) 선택을 하는 중학생인 소년.
그 선택에 후회가 있을지언정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된 정인.
수 많은 선택의 순간에 가끔은 이 책의 정인이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